[동네사람]경남대 신문방송학과 조교 김민규 씨

"교수님들이 제가 더 나은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셨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졸업생은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매일 밤을 설치면서 지냈다. 자신이 살아온 구미보다는 대학을 나온 이 지역에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원서도 넣어봤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 사이 교수들이 조교를 권했다. 진로에 대한 불안함에 머뭇거렸지만 고민 끝에 조교가 됐다.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조교 김민규(28·사진) 씨는 그렇게 다시 학교에 남았다.

학생 때는 조교라는 직업에 대해 학생들과 편하게 지내면서 수동적으로 학과 업무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조교가 되고 보니 할 일이 많았다. 교수님들의 수업 준비, 각종 학과행사와 일정 조율, 기자재 정리, 학생들 관리에 학과의 사무적인 업무까지 조교는 일반 사무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특히 수업시간표를 짜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그 기간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강의가 꼭 듣고 싶은데 넣어주라는 부탁부터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못 듣는 게 말이 되냐는 항의까지 학생들의 주문사항이 많았죠."

학생들의 요구를 무턱대고 들어줄 수 없었다. 아침부터 시간표를 짜려고 컴퓨터 앞에서 기다렸던 다른 학생들의 수고를 헛되이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차츰 조교에 적응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활용해 공모전을 준비했다.

"공모전에 나가는 후배들을 바라보면 몇 년 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사실 민규 씨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광고쟁이가 되고자 대학 3학년 때부터 틈이 나면 공모전에 참가했다.

"처음 공모전에 나설 때는 지역예선만이라도 나갈 수 있기를 기대했어요. 지역예선을 거칠 만큼 규모가 큰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사실 안 했어요."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지역예선에 참가해 은상을 받고 서울로 가 전국의 쟁쟁한 후보작과 겨룰 기회를 잡았다.

"서울에 올라갔지만 끝내 수상은 못했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그 또한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했죠."

그 이후 몇 번 더 공모전에 참가해 2번의 수상을 더 남겼다. 공모전에서 남긴 발자취 탓일까, 조교가 된 지금도 후배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도움을 청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에요. 밥을 사주면서 도와달라는 청탁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모르는 후배들이 조심스레 말을 걸면서 부탁할 때도 있어요. 사실 어떤 모습이든 애들이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자기가 모르거나 힘들다고 생각되는 것을 묻는 것이니까 그 열정이 대단하잖아요. 근데 저도 사람이라 피곤하거나 귀찮을 때가 있어서 요즘은 다음에 봐줄게 하고 미룰 때도 있어요."

생일 때는 후배들 덕분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도 생겼다.

"저희과가 신방과다보니 교수 영상을 촬영하는 날이 있어요. 마침 그날이 제 생일이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알아보니 수십 만개 중의 하나로 나오는 불량테이프가 거기 있었던 거예요. 그 일 때문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는 정말 끔찍했죠."

최근 민규 씨는 교수님의 퇴임식을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교정에서 많은 선배님과 후배들을 길러내신 훌륭한 교수님께서 퇴임을 하시는데 스승의 범주를 넘어서 인간적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는 분이라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수님을 위해 깜짝 이벤트도 생각 중인데 뭐가 좋을지 걱정이에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학교에서 보내는 그는 현재 새로운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다.

"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해요. 그냥 모든 사람들이 하는 토익공부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긍정적인 민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깊은 사념에 빠져봐야겠어요. 몇 년 뒤에는 분명히 좋은 진로를 찾아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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