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딸 김효정이 쓰는 아버지 김장수 이야기

자취를 하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부녀지간. 오랜만에 집에만 가면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위해 잠을 참으시는 아버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농사짓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땀 흘리고 계시는 아버지 김장수(61) 씨 삶을 딸 김효정(32)이 들여다봤다.

-오늘은 뭐 하고 왔어요?

"오늘은 네 오빠하고 감나무에 약 치고 왔지. 새벽부터 쳤는데 아직 좀 남았어. 내일 마저 치고 또 늦감 따내야지. 얼른 안 따면 먼저 달린 감이 떨어지니까 빨리해야지. 그래도 지난 공휴일에 다 같이 도와줘서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 일을 많이 도왔나요?

"그랬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갔다 오면 소 먹일 풀 뜯어오고, 저녁에는 새끼도 꼬고 그랬지. 어떤 날은 새벽같이 장작을 해서 내다 팔기도 했고. 군대 가기 전날까지도 할아버지 일을 도왔어. 휴가 나와서도 어쨌든가 할아버지 도와서 일을 하려고 했었지. 7남매 중에 장남이라서 할아버지 일을 많이 도와드렸지. 그때는 누이고 동생이고 할 것 없이 일을 많이 했어, 지금도 너희 고모들은 감 딸 때마다 우리 집에 와서 일손을 보태잖아."

젊은 시절 낙동강 가에서 친구들과 장구치면서 흥겹게 놀고 있는 아버지(오른쪽).

-그럼 계속해서 농사만 지어왔던 거예요?

"젊었을 때는 진해 어묵공장에서도 잠시 일 해보고, 트럭에 모래 퍼 나르는 일도 했어. 그리고 농사지으면서도 농한기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른 일도 많이 해봤지. 그래도 할아버지와 함께한 농사를 내 일이다 생각하면서 했지. 과수원에 있는 감나무도 일부는 내가 17살 때 할아버지랑 함께 심었으니까. 이걸로 너희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켰고, 앞으로 결혼도 시키려면 계속해야지."

-지금은 계속 과수원만 하잖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어요?

"지금도 농사지을 때 가장 힘든 것이 태풍이나 추위 때문에 1년 농사를 망치는 것이지. 한 4~5년 전에도 추위가 빨리 와서 감이 얼었잖아. 1년 내내 땀 흘려가며, 몸에 농약 묻혀가며 지은 농사였는데, 얼마 따지도 못하고 감이 얼어서 힘들었지. 수확 못 한 건 둘째치고, 언 감 따는 것도 일이었지. 올해 농사는 잘 되어야 할 텐데…."

-그럼 농사짓는 거 말고는 다른 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한때는 나훈아를 좋아해서 가수를 해 보고 싶었지. 친구들하고 낙동강 가에 가서 노래도 많이 불렀고. 내가 할머니 목청을 닮아서 노래를 좀 잘하지. 요즘도 친구들과 놀러가 노래 한 자락씩 하면 잘한다고 그러지. 그래도 그 당시에 가수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깐 못했고…. 나는 너희 중에 누구 하나 노래를 잘했으면 가수 시키려고 했는데, 어째 노래 부르는 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수박도 하고, 고구마도 심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왜 안 해요?

"손도 많이 가는데다가 해마다 시세가 좋지 않아서 그만두기도 했고, 점점 나이 드니까 감 농사 하나만으로도 힘들어서 그렇지."

-맞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수박·고구마 하던 밭에 전부 감나무를 심었네. 그래도 그때는 우리가 있어서 도움이 좀 됐나요?

"도움됐지.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새벽에 깨우면 같이 가서 일 도와주고 그랬으니깐. 자식이 세 명이나 있었으니까 이것저것 심부름도 많이 시켰고. 뭐 지금도 연락하면 언제든지 오잖아. 가을에도 너희랑 고모들이 있으니 다른 일꾼 없이 하고 있는 거지."

부모님과 나. 나들이 가서 다정히 한컷 찰칵.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삼 남매잖아. 우리 또래를 보면 거의 한두 명이지, 세 명인 집이 별로 없어요. 어떻게 세 명 낳을 생각을 했어요?

"너희 어릴 때는 엄마가 오빠 옆에 두고, 동생 업고, 너 손 잡고 버스 타면 안내양이 손가락질하고 그랬어. 자식 많이 낳았다고. 그게 불과 30년도 안 된 일이지. 그때는 산아 제한한다고 많이 못 낳게 했는데, 지금은 더 낳으라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딸을 하나 더 낳았어야 했는데…. 허허허."

-고모들 이야기 들어보면 내가 뒷모습까지도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잖아요. 아버지 보기에도 그래요?

"그럼. 딸내미가 나를 가장 많이 닮았지. 딸내미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힘깨나 썼을 건데, 허허. 체구는 나보다 엄마를 닮았고…. 오빠나 동생이 나를 닮았어야 하지만, 딸내미가 나를 많이 닮아서 나는 좋지."

-아버지는 지금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뭐예요?

"지금은 뭐니뭐니해도 결혼이지. 장남은 이제 결혼했으니까 됐고, 너랑 동생이랑 남았네. 얼른 가야 하는데. 누가 짝이 있다고 하면 있는 사람 먼저 보내야지. 순서대로 하다가는 언제 할지 모르니. 동생이 먼저 간다고 하면 누나가 있어도 먼저 보내야지. 동생 먼저 보내면 섭섭하겠나? 그리고 요즘은 건강이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사실, 우리가 많이 아픈 것은 과수원 일 하면서부터잖아요. 언제까지 과수원 일 할 생각이에요?

"지금 생각으로는 한 70살까지는 해야지. 동생 학교도 마저 보내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우리 노후도 준비해야 하니까. 너희가 빨리 결혼해야 이 일도 그만하지. 그리고 이제 힘에 부쳐서 예전처럼 못하고 할 수 있을 때 계속해야지. 70살쯤 되면 그냥 소일거리로 하는 거지 뭐."

-그럼 우리도 계속 일 도와야 하는 거네요?

"당연하지. 고모들 봐라. 결혼하고 지금까지도 와서 감 따는 일 해주잖아. 너희도 그렇게 해야지. (정말로 고모·고모부들은 가을이면 늘 와서 과수원 일을 내 일 같이 해주고 계신다) 너희만 하나? 딸내미는 시집가면 사위도 와서 해야지. 며느리들도 일 있으면 와서 거들고 해야지."

앉으나 서나 자식들 걱정이 앞서는 아버지, 본인 다리·어깨 아픈 것보다 자식 아픈 것이 먼저 신경 쓰이고 걱정이라는 우리 아버지. 어릴 때 기억의 아버지는 과수원·가축 돌보는 일 때문에 어디 마음대로 여행도 가 보지 못했다. 이제 자식들 다 컸으니 오빠네·동생과 함께 가족여행 한번 준비해봐야겠네요.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배우고 싶은 딸입니다.

/김효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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