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감시당하고 있다. 정부가 '기계(The Machine)'라고 불리는 비밀시스템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난 단지 테러행위를 예방하고자 '그 기계'를 발명했는데, '그 녀석'은 평범한 사람들이 연루된 강력 범죄를 포함해 모든 걸 다 지켜본다. 정부는 그들을 '(테러와)관련 없는 사람'으로 분류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정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며 그들을 구해낸다. 그 누구도 절대 우릴 발견할 수 없다. 단지 피해자로든, 가해자로든, 누군가의 '(사회보장)번호'가 나타나면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미국 드라마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의 도입부에 매번 등장하는 주인공, 해롤드 핀치의 독백이다. 현재 시즌 2까지 완결된 이 드라마 속 '기계'의 능력은 무한하다. 전화 도청과 이메일 감청은 물론, 구석구석 달려 있는 폐쇄회로 카메라 등 모든 정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아무리 철통같은 방화벽을 구축한 시스템이라 한들 '기계'의 침입을 막을 순 없다. 가히 현존하는 '가장 큰 형'(Big Brother)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랄까.

'기계'는 정부가 취한 테러 용의자 관련 정보 외에, 버려지고 있는 요주의 인물들의 사회보장번호를 수시로 내뱉는다. 비록 테러와는 무관하지만 곧 닥치게 될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고, 대부분 목숨을 잃게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해롤드가 선택한 조력자가 있다. 전직 CIA(미 중앙정보부) 요원 존 리스다.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며 맹활약하는 그 둘의 캐릭터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수많은 '슈퍼 히어로'들과 사뭇 다르다. 모든 힘은 상상 초월의 감시 인프라에서 나온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첩보 데이터 분석 도구가 만든 '세계 열기 지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첩보 감시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가디언 연합뉴스

얼마 전 이 드라마는 '현실'이 됐다. 미국 정부가 실제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개발해 도청과 감청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폭로한 이는 전직 CIA 요원이고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 방지를 위한 활동이었다고 해명했으니, 드라마나 소설이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본다는 막장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인 것처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달에만 970억 건의 정보를 수집한 미국 정부의 행위가 훨씬 더 충격적이었으니 이젠 드라마의 정의를 '현실의 완곡한 반영'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물론 현실이 준 힌트가 참 많았다. '9·11' 이후 불과 6주 만에 통과된 '애국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부터 테러와 관련 있다고 의심될 경우 영장 없이도 인터넷 계정과 전화 모두를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을 드라마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건 미국의 추락이었다. 명색이 80년째 '자유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방송하며 망명객을 받아 온 나라 아닌가. 근데 이 사실을 폭로한 전직 CIA 요원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생활의 희생에 반대하는 나라로 망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과연 그가 바람대로 망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국경 없는 기자회'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14개밖에 안 되는 인터넷 감시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사건을 접하고 왠지 어디선가 겪어본 것 같은 기시감에 시달린 건 드라마 때문이 아니었다. 이 땅에도 인터넷 댓글 작업을 열심히 하는 꼼꼼하면서도 '제법 큰' 형들이 있다.

/김갑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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