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66) 화투 비(12월), 오노도후와 개구리 그리고 나생문

화투를 치면 참 오묘한 것이 비다. 광을 모아도 2점만 주고, 새는 고도리도 쳐주지 않는다. 빨간 띠는 초단으로 쳐주지 않는다. 반대로 무언지 모르는 그림은 쌍피다. 우산 쓰고 있는 아저씨는 어떤 사람인지? 그 옆에 두꺼비로 보이는 것은 두꺼비일까? 개구리일까? 새는 꿩을 닮았다고 하는데 꿩일까? 제비일까?

◇우산 쓴 아저씨는 누구?

우산 쓴 사람은 3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오노도후라는 사람이다. 오노도후(小野 道風 894~967년)는 유명한 일본 서예가다. 일본 위키피디아 사전을 보면 10세기 중국 서풍에서 벗어나 일본 서예 기초를 쌓은 인물이라고 한다.

오노도후는 한석봉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붓글씨 공부가 되지 않고 슬럼프에 빠진 오노도후가 산책을 나갔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수양버들에 오르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개구리가 도저히 뛰어오를 수 없는 수양버들 가지에 미련한 개구리가 자꾸 뛰어 오르는 모습을 보고 참 미련하고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버드나무로 뛰어오르는 청개구리에게 센 바람이 불어와 버들 가지가 땅으로 처지면서 개구리가 버들가지에 올라타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오노도후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다가 기회가 되면 진정한 붓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석봉이 불을 끄고 어머니와 떡 썰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일본 오노도후는 산책하면서 개구리가 버드나무에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두꺼비인가? 개구리인가?

오노도후와 함께 그려진 두꺼비 모양 그림의 동물은 누구일까? 떡두꺼비를 닮은 모습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꺼비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 그림을 자세히 보면 축 처진 능수버들 가지에 뛰어오르는 청개구리가 정답이다. 두꺼비는 나무에 뛰어 올라가지 않는다. 보통 논에 사는 참개구리도 물가나 흙에서는 보이지만 나무에는 오르지 않는다. 버드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개구리를 보면 그냥 참개구리가 아니라 풀잎이나 나무에 잘 올라가는 청개구리로 추측할 수 있다. 보통 청개구리는 90도 벽면도 타고 올라갈 정도로 발바닥에는 흡판(빨판)이 있다.

일본 화투(왼쪽)와 한국 화투. 한국 화투에서 광자 옆에 까만 것은 일본 화투를 보면 수양버들이란 걸 알 수 있다. 우산을 든 사람은 일본 전통두건과 하얀 고무신이 바뀌었다. 사람 옆에는 개구리다. 원래 비쌍피에는 귀신이 우글거리는 나생문과 쏟아지는 비, 번개가 그려져 있다.

◇청개구리와 도깨비

청개구리라서 거꾸로 하는 것일까? 오광 모두 광이 아래에 있는데 비광만 광이 위에 있다. 점수도 3개를 모아도 2점만 준다. 이런 차별은 비고도리에도 있다. 새라고 주워 와도 안쳐준다. 비 초단을 모아도 초단으로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반대로 피는 쌍피로 귀하게 쳐준다.

비쌍피에 나오는 그림은 라쇼몽(나생문·羅生門)을 그린 것이다. 시체들이 즐비하고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으스스한 라쇼몽과 쏟아지는 빗줄기, 번쩍이는 번개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민화투에서 10점으로 가져갈 수도 있고 고스톱에서 쌍피로도 쓸 수 있다. 온갖 귀신이 그려져 있어 도깨비처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왜 겨울인가?

청개구리라서 거꾸로 하고 도깨비라서 변신을 한다. 화투짝 비 4장을 차별하고 비쌍피만 귀한 대접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왜 버들에 제비와 청개구리가 겨울에 배치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비가 일본에서는 음력 11월인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음력 12월로 바뀌었다.

음력 11월이나 12월이나 겨울인데 아무리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좀 더 따뜻한 아열대 기후라고 해도 음력 11월에 초록색 버드나무와 제비는 계절과 맞지 않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인물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사다구로(定九郞)라는 산적이 화투 11월 주인공이었는데 어느 순간 오노도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는 오노도후가 아니라 산적이라고 한다. 산적을 억지로 빼고 그 자리에 교육적인 오노도후를 넣었다고 한다. 노력하면 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일까? 우리나라도 화투를 도박으로 단속을 많이 했지만 일본은 더 심했는가 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비광에 나오는 수양버들, 제비, 청개구리, 라쇼몽, 오노도후 모두 모양이 심하게 변형되었지만 비광은 대표적인 일본 화투의 원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본 문화와 생태가 제일 잘 반영된 것이 화투 열두가문 중에 비광일 것이다. 비쌍피 들어왔다 좋아하는 것이나 벚꽃 아래 꽃놀이하는 것이나 모두 똑같은 일본의 문화적 음모가 아닐까?

/정대수 (창원 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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