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유 없이' 친정을 다녀왔다. 진주 갈 일이 생긴 남편이 내게 길동무를 권한 것이다.

형제 중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것이 핑계가 되어, 김해에 온 이후로는 1년에 고작 몇 번 '이유 있는' 가족 행사에만 참석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올해는 벌써 이래저래 서너 차례나 되는 잦은 진주 나들이다.

남들은 친정어머니를 자주 찾는 엄청 곰상스러운 딸로 알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언니나 남동생처럼 혈육을 살갑게 찾는 환경이나 성격이 못 되기도 하는 것에 더하여 참으로 애매하고 어쭙잖기 짝이 없는 내 이름은 둘째. 그런 덤덤한 내가 그저 별다른 '이유 없이' 어머니를 보고 온 것이다.

사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거리감 혹은 여유를 얻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삼남매 중 둘째인 내가 비로소 다른 가정의 여느 둘째가 갖는 심리적 쿠션감을 갖게 된 것은 교직 발령을 받아 어머니의 자기장으로부터 멀어지고 난 이후부터이니.

남들은 둘째가 부모의 집착이나 동기 간의 책임감으로부터 숨어 살 수 있는 은둔적 자리라지만 내 경우는 전혀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춘기와 이십대를 거쳐 오는 동안 나는 거의 맏딸 같은 둘째요, 아들 같은 딸이었으니. 물론 이해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른둘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안으로 요구되는 모질고 무거운 짐만큼이나 밖으로도 몹시 강하고 사나운 성품을 드러내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용띠고 나는 범띠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용호상박'이란 말처럼, 상상의 동물 중 가장 기가 센 '용'과 현실 지상의 동물 중 가장 사나운 '범'이 '상박'을 하며 함께 살아왔던 풍상의 세월 속, 게다가 '용'은 지상동물의 갖은 장점을 콜라주로 다 갖다 붙인 상상의 동물인지라 그 비현실적인 자존심도 여간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자신만만한 용에게 딱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는 바, 바로 얼굴의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는 코가 바로 돼지의 못난 납작코란 사실이다. 그래서 용띠와 돼지띠가 상극이란 말이 생긴 것인지 어머니는 돼지띠인 당신의 맏딸인 언니를 늘 마음창고에 덜 차 하시곤 하셨다.

결국 상처가 많은 영혼들, 두 여인이 걷는 상극의 얼음은 여간 위태로운 것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기가 센 용과 좌절당해 질척이는 돼지 사이를 중재하느라 범의 심리적 피로감이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심한 엄살일까. 아슬아슬한 둘 사이를 둘째가 중간에서 얼마간 조율해놓으면 다음날 아침 반찬이 달라지곤 했었다.

   

그러면 이번엔 아무것도 도운 일 없는 무위도식의 포식자 막내, 남동생이 고기 반찬에 날름 달려들어 먼저 젓가락질. 살아오면서 내가 요놈만큼 밥을 많이 해먹인 남자도 없다. 그러니 고달프다 아니 할 수 없는 내 이름은 둘째.

'이유 없이' 나타난 딸의 모습에 어머니도 의아해하신다. 네가 '이유 없이' 웬일이고?

/서은주(양산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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