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에어컨 설치기사 하종대 씨

여름에는 종종 은행에 들렀다. 돈을 찾거나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쫓기 위해서다. 은행 영업장 한쪽에 앉아 잡지를 넘기며 즐기는 공짜 피서가 유행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 하면 은행, 에어컨 하면 은행이 떠오른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선풍기로 여름나기를 하던 우리 집에 에어컨이 오던 날, 에어컨 하면 은행이라는 공식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시원한 바람을 몰고 온 에어컨 설치엔지니어, 더운 여름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하는 하종대(39) 씨다.

에어컨 설치 엔지니어인 하종대 씨는 누구보다 바쁘게 여름을 난다. 설치부터 운전까지 꼬박 3시간이 걸리지만 힘든 기색은 전혀 없다.

"620-○○번지 2층 맞나요."

하 씨에게서 배달 주소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혹시 모를 배달 불편에 대비해 주변 환경과 여건을 그에게 전했다.

"에어컨 필요하시면 절이 있는 산에도 짊어지고 올라갑니다. 걱정하지 마시고요.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아직 얼굴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눴지만 출발이 좋다. 때때로 택배기사는 주차와 가파른 2층 계단에 배송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이런 열악한 배달 조건은 작년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하게 한 주범이다.

"좀 가팔라도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순탄한 설치를 위해 물컵을 내밀었다. 키를 훌쩍 넘긴 에어컨 본체와 부속품에다 공구까지…. 배달품을 보며 하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든다. 단숨에 물 한 컵을 비운 그는 "LG전자 마산설치센터 설치기사 하종대입니다. 주문하신 물품이 맞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라며 명함을 건넨다. 힘든 내색도 없이 건네는 첫마디에 친절함이 느껴진다. 주문한 물품을 확인하고 설치 장소를 안내하자 그는 설치와 시험 운전까지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벽도 뚫고 망치질도 해서 시끄러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연장을 집었다.

"제 명함에는 설치엔지니어라고 적혀있는데 기사라고 불러주시는 게 편해요. 설치하는 것도 기술이기는 하지만 에어컨 엔지니어는 생산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죠."

가전업계에 뛰어든 지 10년 차인 그는 8년 넘게 에어컨 설치 일을 하고 있다. 처음 2년 동안은 대리점에서 배달일만 했다.

에어컨 설치 엔지니어인 하종대 씨는 누구보다 바쁘게 여름을 난다. 설치부터 운전까지 꼬박 3시간이 걸리지만 힘든 기색은 전혀 없다.

"물품을 배달하고 돌아오며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플러그 전원만 꽂으면 되는 단순한 일들만 하다 보니 장래가 어두운 거예요. 그래서 에어컨 설치기술을 배웠죠. 가전제품 설치 일 중에서는 에어컨 설치가 기술이 조금 필요하거든요."

하 기사는 미래를 보장받고자 공조 기술을 배우고 본격적인 에어컨 설치에 나섰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그를 찾는 사람도 많아진다고 한다.

"하루에 많이 설치해야 세 대 정도예요. 마지막 시험 운전까지 꼼꼼하게 해 드려야 다시 방문하는 일이 없거든요. 설치하고 AS 때문에 재방문하면 자존심 상해요. 또 날씨도 더운데 에어컨 안되면 고객님들이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아무튼, 한번 설치하면 두 번 다시 AS 없게 하는 게 목표예요."

연방 머리에 땀을 닦으며 벽을 뚫는 하 씨에게선 에어컨 설치 장인 정신이 풍긴다. 내 돈 내고 받는 서비스지만 기분이 좋다.

하 씨 일은 계절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여름엔 바쁘고 겨울엔 한가해서 보일러 기술도 배웠다. 여름에는 더위를 막고,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것이 그의 일인 셈이다.

"여름에는 일이 몰려서 여름휴가는 꿈도 못 꿔요. 남들이 더위를 다 식히면 그때 휴가를 떠나죠. 이 일 하며 가장 힘든 점이죠. 아이들과 제대로 된 물놀이 한번 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누군가의 무더운 여름을 막아내려고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작지만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요. 가족들에게 휴가 대신 시원함으로 대신하는 거죠. 여름에는 우리 집이 별천지예요. (하하)"

하 씨는 웃음을 던지며 시험 운전 버튼을 눌렀다. 설치하는데 2시간 40분이 걸렸다. 그의 친절한 서비스에 난 겨우 물 두 잔으로밖에 대신할 수 없었다.

"자, 시원하시죠. 본격적인 더위가 오면 제습 기능과 함께 사용하시면 더욱 시원합니다. 그리고 에어컨은 약하게 틀고 선풍기와 함께 사용하세요. 절전도 되고 냉방도 잘되니까요."

시험 운전을 마치며 소비자는 왕이 아닌 동네 이웃이 돼 있었다. 더운 여름이 오면 에어컨을 켤 것이다. 에어컨 하면 은행을 떠올리던 것에서 이제는 하종대 씨로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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