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애기나리 이야기

눈부신 신록 아래 일렁이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숲에서 살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빈 숲에 가만히 누워보면 왕성한 생명의 소리들이 어떤 아름다운 선율보다도 더 감동입니다. 제각각의 소리로 우는 새들과 볼을 쓰다듬는 싱그러운 바람의 감촉, 바람결이 선사해주는 온갖 꽃들의 향기가 꿈을 꾸듯 행복하게 합니다. 봄꽃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여름꽃으로 단장하는 유월입니다. 깊은 골에서는 고즈넉이 문상비둘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직박구리 몇 마리는 갈참나무 가지를 흔들며 노래합니다. 자연의 기운이 주는 이 선물에 대한 감사를 무엇으로 답해야할까요? 삭막한 도시에 살면서도 이 향기로운 숲의 품에서 계절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애기나리.

그러나 도시마다 근교 숲길을 가꾸고 길을 내어서 사람에게는 좋지만 숲은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숲이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이상을 탐내는 사람들 때문에 번번이 느끼는 속상함에 엊그제도 무학산 숲길에서 화를 냈습니다. 산그늘 애기나리 군락지를 막 파헤쳐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걸 보면서 울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울창한 숲이라도 이런 자세로 다니면 머잖아 성해 남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애기나리 전초의 모습이 둥굴레와 흡사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캐내고 뿌리가 다르니까 던져버리고 간 것입니다. 애기나리는 둥굴레와 같은 백합과의 식물로 잎과 전초의 모양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다릅니다. 둥굴레에 비하여 전초의 크기가 훨씬 작고 무엇보다도 꽃이 확연히 다릅니다. 결정적인 것은 애기나리는 실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꼭 캐어 보고서야 아닌 줄 알고 버려버린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산마도 캐어서 보니 막대기 같은 단풍마 뿌리가 나오자 던져 버리고 가는 등의 속상한 현장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에게 귀한 만큼 소중히 가꾸고 감사히 여기며 채취해서 건강을 회복하는 공생의 윤리가 간절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울분에 어떤 분은 둥굴레는 맘대로 캐도 되는 거냐고 일침을 가했는데요. 그 역시 옳은 말입니다. 둥굴레 같은 좋은 약재도 채취 시기가 있고, 일정 부분 채취하고 번식을 위해 남겨둘 줄 아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애기나리는 어린 순이 올라올 때는 따서 나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봄에는 우리에게 나물로 내어주고 또 자라나 꽃을 피우며 여름에 열매 맺고 가을에 까맣게 익어 번식을 합니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보주초(寶珠草)·보탁초(寶鐸草)라는 약명으로 쓰이는데, 몸이 허약해서 일어나는 해수·천식에 효과가 있고, 건위·소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또 민간에서는 자양·강장·냉습·명안·나창 등에도 두루 쓰입니다. 이처럼 귀한 약재이자 아름다운 산야초인 애기나리를 채취하여 좋은 약재로 쓰고자 할 때는 예를 다하여, 무리지어 있는 곳에서 일부만 채취하고 파헤친 부분 잘 다독여 다시 잘 번식해 갈 수 있도록 갈무리 해주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야겠습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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