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창녕 우포늪 보전 세진마을

우포늪 초입에 위치한 세진마을은 세계 최초 람사르마을이 되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마을을 방문하는 아이들의 교사가 되어 옛 전통과 우포늪의 자연, 전통놀이와 문화 등 농사철을 피해 마을캠프를 열고 도시로 나간 손자들과 마을을 방문하는 가족들을 가르친다. '인간 세상의 나루'라는 세진(世津) 마을은 조선 선조 때 창녕현감으로 있으며 선정을 베푼 한강 정구 선생이 이름 지었다. 필자도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따뜻한 햇살과 후한 인심 속에 물안개 짙은 봄, 가을의 풍광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따오기 야생 복귀와 산박골의 농경지를 과거 늪으로 되돌리기 위해 주민들의 협력 속에 창녕군과 환경부가 복원을 해나가고 있는 곳이다. 평범한 여느 농촌의 모습처럼 이곳도 빈집이 즐비하고, 어린아이 한 명 없이 어르신들만 옹기종기 모여 농업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논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마을 창고에서 나누어 먹기도 하는 지역이다. 다만 우포늪 초입 마을이라 주말이면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마을 앞을 지나간다. 창녕 조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로 현감인 한강이 세운 만진정(蔓津亭)과 청학재(淸鶴齋), 사성재, 학음재, 세방재, 태원재, 경현재 등과 고려 때 보문각직제학 조계방의 사당인 청구당과 비석이 마을에 있다.

세진마을 논두렁에서 쉬고 있는 원앙 한 쌍.

조계방의 "…혼자 앉아 뜰 가운데 달빛 사랑하노라/ 세상이 부(富)를 따르고 가난 싫어하노니/ 뉘라서 강 마을의 쓸쓸한 나를 기억하리요/ 오직 하늘과 땅만은 후박(厚薄)만은 있노라"는 시처럼 고요하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마을이다. 다행히 오늘날까지 자연환경과 마을 전통문화가 잘 보전된 덕분으로 마을에는 파랑새와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휘파람새와 뻐꾸기, 소쩍새, 쏙독새의 울음소리가 있는 곳이다. 이른 봄에 들어온 호랑지빠귀가 새벽부터 '씨익^^ 씨익' 하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어 사람들이 잠에서 일찍 깨어난다.

마을에서 집 한 채 빌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따오기자연학교를 열고 있는 나도 늪을 방문하는 어린이와 손님들에게 누추한 곳이지만 사랑채에서 묵도록 배려한다. 이곳에서 자연학교를 하면서 늘 옛 마을의 유래와 주변의 자연환경을 잘 지키고 가꾸어 가기를 소원한다. 특히 정한강이 세운 만진정 복원과 따오기 야생 복귀, 그리고 옛 습지를 찾아내어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기 위해 도시의 생활을 정리하고 삶의 터전을 이곳에 정한 것이다. 덧붙여 정한강이 꿈꾸었던 흥학교민(興學敎民) 정신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마을공동체 회복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람사르 마을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오늘도 해넘이를 바라보며 하루를 돌아본다. 오전 화포천에서 어린이들과 생태교육을 마치고, 오후에 방문한 유창희 박사와 함께 온 영동 물안 생태학교 아이들과 달이 솟아오르는 밤까지 늪 길을 걸었다. 밤의 꽃향기를 맡고, 사시나무의 떨림을 바라보며 개구리 소리와 소쩍새 울음에 아이들도 반응한다. 오전에도 아이들이 스스로 오감으로 느끼고 표현하도록 자연교육을 했듯이 밤길에서도 유 박사와 나는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며 자연 안에서 아이들과 가족들이 고요함을 즐기도록 걸었다. 풀무치가 풀 소리를 품어내듯이 초여름밤을 보내며 내일 아침 물안개 속을 다시 걷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인식(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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