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페미니즘(Feminism) 미술이란?

지금이야 화가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주목받는 여성미술가가 많다. 하지만 과거 미술사를 보면 위대한 예술가는 남성이라는 등식 아래 여성 미술가는 소외됐다.

남성이 독점해온 미술계에서 여성을 부르짖은 사람은 미국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으로 1971년 한 잡지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는 미술에서 여성 문제를 주목했고 여성 미술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페미니즘 미술은 기존 미술사에서 소홀히 취급됐던 여성 미술가의 위상을 정립하고 여성의 역할을 재인식하는 미술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관한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본다.

Q. 페미니즘 미술이란 무엇인가?

A. 생물학적 분류에 따른 '여성이 하는 미술'이 아니다. 여성의 역할이 은폐되고 문화의 변두리에 부당하게 내몰린 현실과 왜곡된 여성관을 바로잡는 미술을 뜻한다. 소외됐던 여성의 작품을 발굴하고 그것을 재평가하는 역할도 뒤따른다.

베르트 모리조 작 '점심식사 후'

Q. 한국 페미니즘 맏언니는 누구일까?

A. 나혜석(1896~1948)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다. 그는 일찍이 개화사상을 접한 아버지 덕분에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1913년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한국에 건너와 교사로 일했고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5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21년 경성일보에 선보인 유화 79점은 최초의 서양화 전시회로 주목 받았고 1927년 남편 김우영과 유럽여행을 하던 중 알게 된 최린과 연애, 1931년 이혼을 한다. 나혜석이 이혼 뒤 발표한 '이혼고백장'(1934), '신생활에 들면서'(1935)는 불평등한 여권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부터 미술 활동보다는 여성 문제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썼다. 초기 나혜석은 목판화와 신문 삽화에 여성의 가사노동과 풍속 등을 그렸으며 인물화보다 풍경화를 선호했다. 특히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Q.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에 대해.

A. <이프(if)>는 페미니스트들이 가정하는(if)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페미니즘(infinitefeminism)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지난 1997년 창간됐다. <이프>의 초대 발행인은 윤석남 씨로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로 불린다. 그는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66년 성균관대 영문과를 나왔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서 1982년 첫 전시회를 연 후 어머니와 자신의 삶, 평범한 여인의 삶 등을 작품에 담았다. 그는 <이프> 창간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남성 중심 문화를 페미니즘적인 비평과 대중적 글쓰기로 해부하고 해체시켜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Q.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에 시작된 유럽 미술 아카데미에는 남자 누드모델만 있었다?

A. 당시 유럽 공립미술학교는 여자 누드가 금지돼 있었다. 또한 불행히도 여성 미술가는 남자든 여자든 어떠한 누드모델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남자 누드모델이 허락됐을 때도 부분적으로 천 조각을 걸친 모델의 몸을 그려야 했다.

Q. 인상파 첫 여자 화가는 누구일까?

A. 베르트 모리조(1841~1895)는 파리 살롱전에서 6번 연속으로 당선되고 1874년 최초의 인상파 전시에 참여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뚜렷하게 알렸다. 하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 과소평가됐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부 사람들은 모리조를 모델과 혼동해 창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905년 런던에서 열린 인상파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 13점이 전시되면서 비로소 그의 빛은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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