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초등학교 주변서 달고나 파는 김암길 어르신

'달고나, 쪽자, 뽑기, 오리띠기(오려떼기)'.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과자. 설탕 몇 숟가락 국자에 담아 불에 녹이다가 베이킹 소다를 조금 넣어 휙휙 저으면 금세 부풀어 오르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과자가 만들어진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이 설탕과자의 달콤함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과자에 찍힌 별·하트모양을 침을 묻혀가며 바늘로 콕콕 찍어 뽑는 재미는 덤이다.

10년째 달고나 하나에 100원, 설탕 도넛(윗줄 두 번째) 하나에 200원, 김암길 어르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점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손님 연령층도 다양하다.

직접 만들어 먹겠다고 집에 있는 국자를 태워먹어 어머니에게 혼난 경험도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달고나'는 추억의 또다른 이름이다. 동네에서 흔히 보이던 달고나를 이제는 보기가 힘들다. 가끔 열리는 지역축제 장터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창원 시내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파는 어르신을 만날 수 있다. 김암길(74) 씨. 김 씨는 4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간 탓에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난 김 씨는 해방을 맞으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의령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으로 피란을 갔고 부산에서 쭉 살았다. 김 씨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공부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어렸을 땐 구두닦이를 했고 커서는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일을 했다. 23살에 군대를 다녀와서는 부산 영도에 있는 '대한도기'에서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았고 이어 '국제상사'에 들어갔지만 이 곳에서도 김 씨가 일하던 파트가 없어져 버렸다. "나는 회사랑 안 맞는가 봐"라며 웃었다. 김 씨는 다시 건설현장으로 돌아가 목수, 미장이의 보조일을 했다. 그러다 1997년 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임금 체불로 인해 40여 년 일한 건설현장을 떠났다.

김 씨는 이 때 달고나와 만난다. "나이 많으면 노가다 (막일)는 못 하거든. 이거 만들던 형님이 있었는데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말고 이거라도 하라고 해서 배웠지."

부산 시내 초등학교 앞에서 달고나 장사를 시작했다. 일을 한 지 한두 해가 지난 13년 전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살고 있는 창원으로 이사하게 됐다. 창원에 와서도 달고나 장사는 계속했다. 이 학교 저 학교 옮겨다니며 장사를 했다. 하지만 주변 상점들의 텃세가 있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곳을 찾아다닌 끝에 뿌리내린 데가 바로 지금 자리다.

김 씨는 아침 5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노점 주변을 청소(13년째 매일)하고 동네 뒷산을 오른다. 등산을 마치면 아침을 먹고 오전 9시에 노점을 연다. 그리고 저녁 6시 30분까지 쉬지 않고 달고나를 만든다. 점심도 노점에서 해결한다.

10년째 달고나 하나에 100원, 설탕 도넛(윗줄 두 번째) 하나에 200원, 김암길 어르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점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손님 연령층도 다양하다.

수 년간 거르는 일 없이 매일 장사를 하는 덕에 이제 이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학교 수업이 없는 토요일, 일요일이 장사는 더 잘 된다고 한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러 나왔다가 달고나 사먹으러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고.

초등학교 수업이 파한 시간이 훌쩍 넘겼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주부, 그리고 30대 후반쯤 돼보이는 아저씨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자녀에게 달고나를 사주러 온 주부는 "어렸을 때 만들어 먹던 추억이 있잖아요. 애한테도 그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고, 김 씨 가게의 단골이라는 여고생은 "학교 빨리 마치는 날에는 꼭 온다"며 별 모양 뽑기에 여념없었다. 어떤 아저씨는 10개들이 두 봉지를 사갔다.

10년째 달고나 하나에 100원, 설탕 도넛(윗줄 두 번째) 하나에 200원, 김암길 어르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점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손님 연령층도 다양하다.

주고객층이 초등학생일 거라 막연히 추측했지만 아이를 둔 엄마들이 사가는 경우가 많단다. "요즘 애들이 영악해서 한 명이 사먹으면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어 자기들도 사달라고 해. 안 사주면 왕따시키는 거지. 그래서 엄마들이 사다 준다"며 김씨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달고나 한 개에 얼마나 할까.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달고나 한 개에 100원, 설탕 도넛은 200원, 즉석에서 만드는 것은 여기에 100원을 더해 팔고 있다. 10년 전 가격 그대로란다. 축제 장터에서 개당 500~1000원을 받는 것에 반 값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싸게 팔아서 남는 것이 있을까 싶다. 돈을 더 받아도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김 씨는 "안 돼요. 가격 올리면 사람들이 안 사먹어"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도 100원 정도는 올려도 되지 않느냐 했지만 절대 올리지 않을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달고나 하나를 만들 땐 젓가락으로 40~50회 저어줘야 하며 25~30초가량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많이 만들면 손목에 무리가 온다. 막노동을 할 때 다친 손목이라 더 아프지만 김 씨는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거란다.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겐 재미를 주는 이 일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 할 생각이다.

"아내와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지냈으면 좋겠다"며 소박한 꿈을 전하는 김 씨는 오늘도 동네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 하나를 구워주고 있다.

10년째 달고나 하나에 100원, 설탕 도넛(윗줄 두 번째) 하나에 200원, 김암길 어르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점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손님 연령층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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