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미각교육 사라지고 자본이 만든 맛에 길들여져

여러분은 자신의 미각이 진실하다고 믿습니까.

지난 23일 창원대에서는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초청으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강연이 있었습니다. <미각의 제국> <한국음식문화박물지> 등으로 잘 알려진 음식 전문가입니다. 마산 진동 출신이기도 합니다. 주제는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 무슨 뜻일까요. 황교익은 강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대체로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경지는 교육에 의해 이루어진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에는 어떤 맛이 난다 하고 누군가로부터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미각 교육이다. 이것이 바로 밥상 머리 교육이다. 부모는 같이 밥을 먹으며 알게 모르게 자식들에게 맛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도 자식도 바빠 이 가정 내 미각 교육은 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미각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의 식품 광고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외식업체 전단 등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대중매체의 미각 교육이란 대부분 상업적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조작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자극적인 맛을 앞세워 그게 진정한 맛인 양 호도하여 우리를 그 맛에 중독시킨다. 화학조미료를 두고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주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말하는 자본이 우리 미각을 길들인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몇 가지 더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정부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만든 '식품공전'이라는 게 있습니다. '식품공전'은 한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식재료들에 대한 공통기준 및 규격을 정부 차원에서 정해놓은 일종의 '대한민국 식품 헌법'입니다. 식품공전에서 '된장'을 정의해 놓은 글을 한 번 보겠습니다.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 등을 주원료로 하여 누룩균 등을 배양한 후 식염을 혼합해 발효·숙성시킨 것 또는 메주를 식염수에 담가 발효하고 여액을 분리하여 가공한 것을 말한다."

흔히 된장이라 하면 잘 삶아진 콩을 으깨 메주를 띄운 다음, 이를 높은 상온에서 누룩균을 배양해 말린 후, 소금물에 잘 풀어 만들어 낸 전통 양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식품공전에 쓰인 된장의 주원료는 '콩'이 아닌 '대두, 쌀, 보리, 밀 또는 탈지대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탈지대두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말합니다. 국외 여러 나라에서는 동물 사료로 쓸 뿐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재료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자본이 적은 돈을 들여 싸게 찍어내는 공장식 된장 제조법입니다. 이 공장식 된장 제조법이 전통 된장 제조법보다 우선한다는 현실. 개탄스럽지 않으십니까?

황교익이 든 예는 또 있습니다. TV에서 이런 광고 보셨을 겁니다. '수미 감자로 만든 감자칩'. 여기서 '수미'란 감자 품종 중 하나입니다. 미디어에서 '수미 감자'를 띄우다보니 시장에 장을 보러 나온 엄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수미 감자'를 찾고 있습니다. 많은 감자탕집도 이 수미 감자를 넣어 감자탕을 내놓습니다. 한데 이 '수미'는 맛없는 품종의 대표격입니다. 수미 감자는 여느 품종보다 단단하고, 칼로 썰면 진득한 진물이 나옵니다. 때문에 칩으로 만드는 것 외에는 쓰임새가 부족한 품종이죠. 자본과 미디어는 이렇게 또 우리 미각을 길들이려 합니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요리 유학을 간 학생들이 놀라는 것이 있답니다. 선배 요리사가 재료 구입을 시키면서 '어느 지역에서 재배된 어느 품종의 것을 사와라'고 주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를 다 따져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황교익은 한국인들 미각은 아직 미개한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자본이 들러붙어 사람들 입맛을 마음껏 조종하고 다니는 것이지요.

강의가 끝나고 느낀 게 있습니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깨어야 합니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음식에 대한 생각의 깊이와 정도를 더해 저마다 자신만이 가진 미각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찾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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