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특히 해외여행을 하면 대부분 차를 빌려 하는 편이다. 보통 네 명 정도 팀을 짜서 갹출하는 편인데 그중 가장 성격이 급함에도 경험이 많다는 한 가지 이유로 핸들을 잡게 된다. 덕분에 운전 안 하고 산 지 제법 오래인데 여행만 가면 그간 안 했던 운전을 몰아서 하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소산이지만 여러 나라에서 운전하며 내린 작은 결론이 하나 있다. 검증이 아닌 가설의 단계라는 전제 하에, 그 나라 운전자들의 운전 매너와 그 나라 정치 수준 사이에 일정 부분 함수관계가 있다는 거다. 이해하기 쉽게 삼단 논법으로 정리하면 '운전 매너=시민의식의 표현'이고 '시민의식의 표출=정치 수준'이니 결국 '운전 매너=정치 수준'이 되는 식이랄까.

지난 1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광장에서 열린 '안전체험 한마당'의 한 장면. /연합뉴스

영국의 경우 좁은 길에서 마주쳤을 때 상향등을 깜빡여 먼저 지나오라는 양보의사를 전달하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양쪽에서 순서대로 양보한 뒤 예외 없이 눈을 마주치고 수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가장 경이로운 모습은 편도 일차로의 산길에서 본 풍경. 자전거 한 대가 힘겹게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그 뒤로 수백 대의 자동차가 경음기 한 번 울리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꼬불꼬불한 길이니 추월도 불가능했지만 그 인내와 배려가 눈물겨웠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초행이라 참 많이 헤맸다. 매번 갈림길에서 차를 세운 채 두리번거렸고 때론 역주행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재촉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고 누군가 차에서 내려 서툰 영어로 안내해 주곤 했다. 그들 나라 대부분 안전거리 잘 지키고 끼어들기 잘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될 땐 흔쾌히 양보해 줬다. 모두 정치 수준과 시민의식에 관한 한 그다지 나쁜 평판을 받고 있는 편이 아니니 '얼치기 이론'이 힘을 받는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가 그랬다. 그걸 정열이라 하면 할 말 없지만 두 번 다시 그 나라에서 운전대 잡고 싶지 않을 만큼 매너가 엉망이었다. 어느 도로든 절대 차 간격을 용인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경음기를 울려댔고, 끼어들긴 무지 하되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딱 하루 운전하고 난 밤, 숙소의 TV에서 총리로 세 번째 임기수행 중인 베를루스코니의 섹스 스캔들 뉴스를 접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모든 법칙엔 예외가 있다. 이 '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이 그렇다. 표리부동의 극치다. 운전 매너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양보와 인내, 배려,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다. 마땅히 정치 또한 그래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본의 정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어 보인다. 아베 총리에, 이시하라 같은 자가 도쿄 시장을 지냈고 하시모토 같은 이가 오사카 시장이라면 그 나라 시민의식도 의심해 봐야 한다. 정치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그 나라 시민들이 만드니 그렇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 우린 어떤가? 도로에 차를 몰고 나가는 순간 나 외에 모든 운전자를 제압해야 할 적으로 여기진 않는지, 운전할 때 보행자는 거추장스럽지만 정작 도로를 걸으면 자동차들을 흉기처럼 느끼진 않았는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편견으로 일단 여성 운전자는 도로 위 공공의 적이라 여기며 업신여기진 않는지, 초보에게 배려보다 위협과 무시로 일관하며 으스대진 않았는지, 핸들 붙잡고 난폭운전 하면서도 이 모든 게 정치 때문이라며 자신에게 면죄부를 남발하진 않았는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도로 위에 그 나라 있다.

/김갑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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