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 귀거래 말뿐이오 간 이 없네

전원이 장무(將蕪)하니 아니가고 어찌할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들며 기다리나니!

73세의 이현보는 벼슬을 사양하고 '농암가'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젊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술을 나귀에 싣고 마중을 갔다고 한다. 돌아가자는 것이 귀거래인데, 중국 진나라 때 시인 도연명의 자연의 오고 가는 이치로 돌아가는 삶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귀향. 어릴 때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훌훌히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친구들이 모여 밤새 도란도란 청담을 나누고 20년, 30년, 40년을 그렇게 나누고, 우리가 부르고 싶은 귀거래사가 고작 이런 것인데….

3일에 한번 투석을 해야 하는 97살의 노구를 이끌고 뉴욕에서 경남도립미술관(8월 21일까지 전시)을 찾은 최고령 재미화가 김보현(미국명 Po Kim)의 전시에도 귀거래사가 걸렸다. 화백의 고향은 창녕이다. 세계를 떠다니다가 돌고돌아 고향 미술관에 자신의 흔적을 걸어놓고 귀거래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1955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에 교환교수로 건너가기 전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지만 고국에서 생활은 굴곡이 많았다.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는 영문도 모르고 좌익으로 몰리기도 했고, 6·25전쟁으로 북한 인민군이 광주를 점령했을 때는 친일 반동분자로 찍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일종의 자기망명이었다는 뉴욕 생활도 여러 직장을 전전해야 했고 시간당 1달러를 힘겹게 벌며 매일 12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뉴욕에 진출한 첫 한국인 미술가 김보현 화백. 그의 그림에는 2차대전 이후 세계 미술계를 풍미한 '추상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작품은 초기 추상에서 사실주의, 구상표현주의를 넘나들었다. 최근 다시 추상화에 천착하면서 선, 면, 색을 동양정신과 조합한 한국적인 추상표현주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이국땅을 밟고 사는 이에게 조국은 뜨거운 가슴이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는 평생을 바쳐 그린 작품 240점을 조국에 기증했다. 1940년대 말 자신이 만들었던 조선대 예술과에 자기 분신으로 여기는 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미국 100인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아내 실비아 왈드의 작품 63점도 조선대에 기증했다. 왈드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근대미술관,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등 전세계 34개 공공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미국 판화 일세기> 등 권위 있는 미술서적에도 수록돼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다.

   

최고령 화백의 귀향. 그의 귀거래사에는 미국인 아내의 그림도 함께했다. 이번 전시에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김보현(Po Kim)과 실비아 왈드(Sylvia Wald)'라는 제목으로 모두 80점의 작품을 내걸었다.

1995년 예술의전당 개인전과 2007년 덕수궁미술관 회고전 이후 5년 만의 전시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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