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과 톡톡]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

'넉넉한 바구니'라는 뜻의 '우람'(優藍). 이수영(47)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가 지난 1998년 회사 이름을 지으려고 철학관에 가서 얻은 이름이다. 철학관에서 이 대표의 풍채를 보고, 바로 작명한 것이란다. 이름대로 우람종합건설은 넉넉해졌다. 15년 만에 4개 계열사를 가진 종합건설회사로 도내 상위권 종합건설업체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회사에서 번 돈은 결국 지역민,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며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다. 그런 그를 보고 주변 기업인들은 "돈 벌어서 넘(남) 다 줘버리고, 니(너) 우짤끼고(어찌할 거냐)?"라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남 좋은 일은 자신에게도 기쁜 일이라며 묵묵하게 그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지난 14일 오전 진주시 금산면 중천리에 있는 우람종합건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후원 사업에 적극적인 기업가

-각종 기부금을 많이 냈다고 여러 매체에 보도 됐습니다. 특히 고향인 하동군, 졸업 고교와 대학교에 기부금을 많이 냈습니다.

"지역 향토 장학 사업, 하동고 총동창회 발전기금, 경남과학기술대 발전기금 등으로 기부금을 냈습니다. 경남 FC 후원에도 1억 원을 기부했고요. 내년쯤에는 회사에 장학재단을 만들어 후원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다른 건설업체 대표님들은 '돈 벌어서 넘 다 줘버리고, 니 우짤끼고'라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웃음)"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김구연 기자

-기부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대학에서 야간 수업을 들으며 토목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교와 교수님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 그러다 보니 모교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모교인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특강을 요청하면 1시간 강의인데도 3시간씩 열강을 합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하동군에 와서 무료 의료서비스를 펼치는데도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동군민 658명이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하동군 보건소에서 진행한 무료 의료 봉사 활동 수혜를 보았다고 합니다. 1차 검사에서 정밀진단이나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상 소견을 보인 이들은 서울대병원에서 2차로 무료 수술 받은 것으로 압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분당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하동군에 와서 진료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의료 기술이 뛰어난 서울대병원에 후원금을 내게 되면서 고향인 하동군에 와서 의료 봉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울대병원에 지난 2009년에 1억 원, 2012년에 1억 원 등 총 2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하동군과 분당 서울대병원이 진료 협약을 체결해 전국 최초로 영상으로 진료하는 핫라인을 구축하는 데도 힘을 보탰습니다. 하동군보건소에서 진료·검사를 받으면, 서울대병원으로 그 기록이 전달되고 영상으로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진료를 할 수 있게 됩니다. "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김구연 기자

-이 일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 인대가 늘어났어요. 당시에 병원 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다리를 조금 절게 되셨는데요. 요즘 같으면 완치가 됐을 텐데 당시에는 치료비가 없었습니다. 고향 분들이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사업 시작

-우람종합건설이 도내 상위권 종합건설회사로 우뚝 성장했습니다. 건설회사 설립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남인 제가 어머니를 도와 집안 일을 꾸려갔습니다. 밑에 동생이 넷이나 돼서 어렸을 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논, 밭일은 기본이고, 인근 강에서 물때 맞춰 재첩 채취하는 일 등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요. 고등학교 때 취업을 할 수 있는 토목공학을 선택했고, 건설회사에서 줄곧 일했습니다. 월급쟁이로 돈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삼십대 초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사업을 시작한 셈입니다."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가 본사 사옥을 가리키고 있다./김구연 기자

-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부산, 통영 등에서 건설회사 일을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10년 정도 지역에 있는 한 건설업체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스물여섯 살에 현장 소장을 하고, 스물아홉 살에 이사로 진급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현장을 익혔습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이듬해에 회사를 차렸어요. 초반 빚이 7억 원이 넘었는데, 1년 만에 건설 수주를 열심히 받으면서 빚을 다 갚았습니다. 한꺼번에 80군데까지 사업을 벌였습니다. 4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가 자리를 잡았어요."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김구연 기자

역사적 건축물 보람 느껴

-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우람종합건설은 보통 도로, 하천, 항만, 터널 등 토목공사 위주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역사적인 건축물 조성 사업을 몇 차례 했는데, 보람이 컸습니다. 하나는 가야 역사 테마파크 조성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진해 웅천 도요지 복원사업 공사입니다. 가야 역사 테마파크 사업은 내년 말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야왕궁을 지을 때는 광화문 공사팀을 불러서 작업을 했고요. 가야를 떠올리면서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또 지난 2011년 사업을 마친 웅천 도요지 복원사업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예인들의 혼을 달래고자 그 당시를 재조명하는 건축물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후손들이 이곳을 찾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수영 우람종합건설(주) 대표이사./김구연 기자

사람 만나는 사업, 몸에 꼭 맞아

-대표님만의 사업 수완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나이는 젊지만 나이 든 사업 파트너와 말이 잘 통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실제보다 10살 정도 많은 나이로 봤어요.(웃음)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어르신들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르신 세대 얘기를 한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실제로 시골에서 다 경험했던 것을 말했던 겁니다. 또 제가 사람 사귀기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사업을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정보도 얻고 인맥을 넓혀 나갔습니다. 건설 사업은 제 몸에 딱 맞고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그간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회사가 급성장을 하다 보니 조사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2004년 말 경남경찰청에서 첩보가 들어왔다며 사무실로 찾아왔고, 이듬해 2월에는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검찰도 집, 회사를 압수수색했어요. 8개월간 조사 때문에 집, 회사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다행히 고비를 잘 넘기면서 오히려 그 일이 '확실히 검증받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국세청장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우람종합건설의 사훈./김구연 기자

사업가로서 꿈꾸는 미래

-궁극적으로 어떤 사업가가 되고 싶으신지요.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처럼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노력하는 기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우람종합건설은 초창기에는 직원 10여 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였지만, 지금은 직원 90여 명에 계열사 4곳을 가진 회사로 컸습니다. 매출도 매년 700억 원가량 됩니다. 내년에는 자체 개발 사업 등을 통해 1500억 원 이상까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급 공사 위주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관에서 준 돈은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만큼 사회 환원에 적극적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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