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딸 김도영이 쓰는 어머니 최양선 이야기

'엄마'라면 가족을 위한 희생이 당연하고, 자녀 일상 속 투정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못난 딸 김도영(28). 그런 내가 마치 철든 것처럼 어머니 최양선(50) 씨 인터뷰에 나섰다.

-엄마,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힘들지 않았어요?

"애가 애를 키운다고 고생 많이 했지. 스무 살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으니까.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외지에 나와 살아서 살림을 안 해 봤더니 신혼 때는 쌀을 씻어 솥에 안치는 것부터 허둥지둥했었어. 찌개 하나, 나물 하나 하는 것부터 새로 배워야 했거든. 그래도 부산에서 신혼살림 시작하면서 당시 주인집 할머니랑 이웃 언니들이 귀여워 해주셨어. 가족처럼 참 많이도 챙겨줬던 기억이 나네."

-할머니가 안 계셔서 더 그랬겠어요.

"그때는 어려서 힘든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세월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는 해. 내가 너희한테 장난스럽게 '너는 좋겠다. 엄마가 다 챙겨줘서'라고 한 것도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어. 지금 내가 너희 엄마기는 하지만 나도 누군가 딸로서 챙김 받고 싶고, 힘들 때 마음 기댈 사람도 필요했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와중에 네 오빠가 참 착하고 순해서 그렇게 버겁지는 않았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어린 나이에도 뱃속에 너 가진 뒤로 '업기 너무 힘들다. 손잡고 가자'고 하면 두말 안하고 한참 먼 길도 다리 아프다 한마디 없이 따라 걷고는 했지."

2013년 5월 어느날 공원에서 엄마와 함께 한컷.

-나는? 오빠처럼 말 잘 들었어요?

"너는 아무렴 효녀지. 근데 반어법인 거 모르는 거 아니지? (웃음) 밤새 안자고 머리만 눕히면 '빽'하고 내내 울어대는 통에 이웃집에 피해 갈까 봐 엄마가 너 둘러업고, 집 앞 바닷가 추운 곳에서 한참을 동동거리며 서서 고생도 많이 했다. 그래서 네 뒤통수가 얄밉게 동글동글한 거 알아 몰라?"

-몰라요. (웃음) 그럼 엄마 유년기는 어땠는지 말해주세요.

"엄마는 누구와는 달리 말을 잘 들었지. 그리고 공부는 싫어했어도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해서 불 꺼질 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많이 읽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국어를 잘하게 되고, 학교 대표로 출전한 백일장에서 상도 자주 타면서 국어 선생님 예쁨도 많이 받았지. 근데 중요한 건 영어·수학은 쥐약이었어. 그래서 너도 셈이 잘 안 되나 보다."

-요즘 엄마 관심사는 뭐예요?

"최근 관심사는 당연히 건강이겠지? 엄마도 아빠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조금씩 반항을 해대니까. 이제 식이요법, 이런 게 눈에 들어오더라. 그렇게 짠 음식, 육식 좋아하고 과일 하나 잘 안 챙겨 먹던 우리 집에 갑자기 브로콜리부터 파프리카, 현미밥, 여러 채소가 있는 것 보면 알잖아. 나도 사실 밍밍한 반찬들은 정말 입맛에 안 맞는데, 아빠도 최근 많이 노력하시고 나중에 너희 고생 안 시키려면 부지런히 관리해야지."

-그럼 생각하시기에, 건강하게 부부 사이를 이어가는 기술은 뭘까요?

"사실 정답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엄마가 평소에 생각하는 건 '부부간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해. 서로 상대방 마음을 완벽하게 헤아리고, 또 다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거잖아? 내가 내 속으로 낳아 기른 너도 다 이해 안 되고 답답할 때가 많아. 그런데 하물며 아빠와 엄마는 각각 한참을 다른 생각과 삶을 살던 사람들 조합이니까 항상 잘 맞고 일치할 수는 없지. 하지만 우리가 젊은 날부터 이어져 온 아픈 기억도, 또 좋은 순간도 다 함께하면서 같이 고생하던 기억이 쌓여 있으니까 그 기억들 떠올리며 서로 이해하는 거야. 쉽게 말하면 서로 안쓰럽게 생각하면 화가 나다가도 '그래, 어이그! 이놈의 인간'하고 어느새 참아지는 거지."

-저희 키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요?

"한순간 한순간이 다 기억에 남지. 너희가 처음 하품하고, 기고, 걷고…. 아기 때 배냇저고리,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 준 편지도 다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 어디에 뒀는지는 모르겠네. 또 네가 초등학교 때 엄마 줄 거라고 고사리손으로 갈대 한 움큼 꺾어 와서는 온 방에 갈댓잎 날리게 했었잖아."

-기억나요. 그래도 안 버리시고 TV 위 꽃병에 꽂아 놓으셨던 것 기억하는데.

"꼬맹이 마음이 기특한데, 어떻게 바로 버리겠어. 또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불량과자 사 들고 와서는 엄마랑 나눠 먹겠다고 해서 같이 많이도 먹었었잖아. 그래서 엄마는 얼굴에 '칭찬해 주세요'라고 써 놓은 듯 웃고 있는 그 때 순수한 어린 너도 좋고, 어느덧 지금 엄마가 의지할 수 있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28살의 너도 똑같이 좋으네."

-지금 제 단점이나, 고쳤으면 하시는 점은요?

"너는 평소에 생각이 너무 많다. 자신을 스스로 너무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네 생각을 존중해왔어. 그런 것처럼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네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너도 내 나이 되면 뒤돌아 볼 일이 참 많지 않겠어? 그게 좋은 일이든 혹시 나쁜 일이든, 모든 판단은 그때 흘러간 기억들 곱씹기 좋은 나이에 해도 늦지 않은 거야. 또 잔소리 발동하기 전에 여기까지."

-고쳐볼게요. 이제 마지막으로 엄마가 기대하는 딸 모습은 어떤 거예요?

"별것 없지. 지금처럼 아픈 데 없고 있는 그대로, 우리 집 가훈처럼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참, 엄마·아빠가 꼬부랑 할머니·할아버지 되기 전에 좋은 사람 데려오는 것까지. (웃음)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하든 즐거울 수 있는, 또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거지. 엄마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항상 네가 하는 선택을 믿는다. 우리 잘해 보자!"

가끔은 아이처럼 철없는 엄마였고, 힘든 순간에는 든든한 산이었다가, 또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평생 솔메이트가 되어 준 엄마였기에 어버이날 즈음 한 이날 인터뷰가 더 뜻깊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리고 모녀간 친밀함을 질투할지도 모르는 아빠께도 아부성 발언을 남기며 이상 인터뷰를 마치려 한다.

"아빠, 아빠도 많이 사랑합니다! 내 맘 알죠?"

/김도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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