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조산사 구순태 씨

드라마 <직장의 신> 미스 김 매력에 푹 빠져 사는 요즘이다. 러시아어부터 비행기 정비, 버스 운전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슈퍼 갑' 계약직 미스 김. 그가 최근에는 아이까지 직접 받았다. 극중 임신 상태였던 자염 장인의 며느리가 갑자기 산통을 느끼자, 두 팔을 걷어붙이며 출산을 돕겠노라 나선 것이다. 한손에 당당히 조산사 자격증을 내밀며 말이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하게 아이를 받아 내는 미스 김을 보며 감탄에 젖어 있을 때쯤. 문득 든 생각 하나. 조산사가 뭐지? 듣자마자 쉽게 뜻을 정의 내릴 수 없는, 알 듯 말 듯하면서도 조금은 생경한 느낌마저 드는 단어, 아니 직업이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낯설게 들릴 수도 있어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도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르긴 매한가지죠. 쉽게 말해서, 임신부가 아이를 낳을 때 정상 분만을 돕고 산후관리와 신생아를 간호하고 지도하는 출산 전문가죠."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조산원을 운영하고 있는 구순태(59·사진) 원장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아 본 듯, 익숙하게 설명했다.

   

최근 들어 옛날 어르신들처럼, 병원이 아닌 집이나 조산원에서 새 생명을 맞이하는 자연주의 출산이 관심을 받고 있다. 무통주사 등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의료개입을 최소화하고, 아기가 온전히 스스로 힘으로 세상에 나오게끔 하는 것.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당연시 됐던 출산법이다. 조산사는 그 전통적 출산법을 임신부가 무사히 수행할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고 지지하는 든든한 조력자 노릇을 한다.

"분만에도 인권이 있어요. 분만 주체는 임신부이지 병원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에요. 하지만 의료진 시스템에 맞춰진 딱딱하고 경직된 병원 환경은 경이롭고 숭고한 출산을, 그저 수많은 일 중 하나로 만들며 천편일률적으로 진행하죠. 저희는 최대한 산모와 아기에 초점을 맞춰 분만을 유도합니다."

구 원장이 말하는 인권 분만은 조명부터 다르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갑작스런 외부 환경에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밝기를 어둡게 조절한다. 예비엄마는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딱딱한 침대에 꼼짝 없이 누워 있지 만은 않는다. 서고 싶으면 서고, 걷고 싶으면 걷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아이를 기다린다. 물과 음식도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임신부 사이에서 이른바 3대 굴욕이라 불리는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재가 없다보니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대변과 소변을 보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무슨 잘못한 일을 한 것처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구 원장은 대소변을 손수 치우며,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한다.

"엄마와 아이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중요해요. 세상에 갓 나온 아이는 신생아실이 아닌 엄마 품에 안깁니다. 엄마에게서 따스한 체온을 한동안 느끼며 안정을 찾죠. 모자동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이가 배고플 때마다 젖을 물릴 수 있어 모유수유 성공률도 높아요."

사실 구 원장도 처음부터 자연주의 출산을 지향한 건 아니다. 1980년 조산원을 개원할 당시만 해도 병원시스템에 맞춘 출산법을 따랐다. 2000년 들어, 우연히 자연주의 출산을 다룬 방송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자연주의 출산이어야 하는지 그 의의도 의미도 몰랐다.

각종 의료조치 없이 출산이 이뤄지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그때부터 관련 자료나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머릿속 이론은 하나 둘 채워져 갔지만, 과연 아무런 약물 투약 없이 출산이 무사히 이뤄질지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첫 환자를 받은 후 의심은 곧 믿음으로 바뀌었다.

"간호사가 찾아 왔어요. 뜻밖이었죠. 병원에서 행해지는 출산법이 기계적인 것 같다며, 최대한 외부제약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아기를 낳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분만 당일,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 후, 온 신경을 오로지 엄마와 아이에게만 집중했어요. 모든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 호흡법을 조절하며 결국 오랜 산고 끝에 아기를 무사히 안았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피곤이 역력한 엄마 얼굴에 성취감과 후련함, 기쁨과 감동이 피어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로부터 600명이 자연주의 출산으로 새 생명을 가슴에 품었다. 초보 예비엄마부터, 병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엄마까지,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한 여성도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번뜩 용기가 나지 않는 경이로운 체험에 동참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왜 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면 자연출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따스한 경험인지 깨달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요."

엄마와 아기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평온한 출산. 하지만 감염위험과 응급상황 등 논란의 여지는 있다. 자연의 순리에 맡긴 느리게 흘러가는 출산이냐, 조금 덜 고통스럽고 빨리 아이를 낳느냐는 결국, 개인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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