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65) 대나무

◇신통방통 대나무 = 점보는 집 대문에 대나무를 세워 놓은 걸 쉽게 볼 수 있다. 왜 대나무를 무당집이나 점집 대문에 세워둘까? 자주 보지만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대나무 작대기로 칼싸움하고 놀 때 도사님처럼 대나무 작대기를 짚고 다니면 동네 할머니들이 대나무 작대기를 짚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혼을 냈다. 도대체 왜 대나무 작대기를 짚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것일까?

◇점집 대문엔 항상 대나무 = 신을 부르고 신을 내리게 하는 신목이 대나무다. 대나무는 신이 강림하는 통로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대나무를 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무당들이 굿을 할 때 가장 많이 드는 것이 바로 대나무 가지라고 한다. 지금도 무당집이나 점집의 표시이기도 하고 세속의 잡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구역표시도 된다.

전통 혼례에도 소나무 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올렸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혼례를 신성하게 해준다. 신랑 신부의 지조와 절개를 소나무와 대나무에 대신 투영했다. 대나무와 소나무는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 나쁜 액을 막아 준다고 믿었다.

집을 지키는 성주신도 솔가지를 묶은 대나무를 타고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우리 동네 정월 대보름 달집도 소나무와 대나무로 만들었다.

신라 만파식적도 신통한 대나무로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대나무는 신목이고 우주목이다.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안테나이고 기지국이 바로 대나무였던 것이다.

일주 김진우의 묵죽도.

◇아버지상에는 대나무 지팡이 = 토정비결에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다투니 몸이 삼밭에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부친상이 나면 대나무를 짚고 모친상은 오동나무 짚는다는 뜻이다.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게 된다는 구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유교 예법이 적혀 있는 책 <예기>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둥근 하늘이고 오동나무는 네모난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대나무는 험난한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대나무처럼 꼿꼿한 아버지를 상징한다. 가장으로서 의연함이 대나무와 닮았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여린 외강내유의 모습이 아버지가 아닐까? 아버지의 말없는 사랑을 대나무에 비유했다.

오동나무는 오래 될수록 속을 비운다. 자기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 자식을 품는 오동나무와 어머니는 참 닮은 점이 많다. 대나무도 비우고 비워 대금과 만파식적의 소리를 내듯이 아버지가 되는 것도 비우고 비워야 하는가 보다. 오동나무는 자기 속을 비우고 비워서 가야금이 되고 장구가 된다. 비운 오동나무에서 아름다운 가얏고 소리가 난다. 어머니도 비우고 비워서 자식을 만들고 빚어낸다. 비우고 비워야만 어버이가 되는가 보다.

탄은 이정의 설죽도.

◇사군자 대나무 대쪽 같은 절개 = 매란국죽 사군자에도 대나무가 있고 세한삼우도 소나무 대나무 매화 3가지로 대나무가 들어간다. 선비들은 왜 이렇게 대나무를 좋아했을까?

대나무는 무서리에도 굽히지 않는 의연한 선비의 기상을 가졌다. 늙어도 시들지 않고 겨울에 서리 내리고 폭설이 와도 홀로 의연하다. 올곧게 서서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대쪽 같은 절개라고 했다.

◇풀인가 나무인가? 식물계의 박쥐 = 대나무는 참 궁금한 게 많은 나무이고 풀이다. 식물 분류로 보면 풀이지만 사람들의 삶 속에는 풀이 아니라 나무로 대접받는다. 대가 나무가 아니고 풀이라고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갑갑한 양반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편을 가르고 갈린 편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했던 지난 100년의 삶이 아마 우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 오우가는 대나무의 절개와 겸허함을 예찬했다. 조선시대에도 대가 풀이든 나무든 아무 관계가 없었다.

거제 맹종죽테마파크 대나무. /경남도민일보 DB

◇댓잎 스치는 바람 소리 =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고 벽오동 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했다. 대나무 열매만 먹어서 아마 봉황은 멸종했을 것이다. 중국 판다도 댓잎만 먹어서 멸종위기종이 아닌가? 대나무가 시들면 판다도 죽어간다. 봉황이나 판다처럼 사람도 너무 곧으면 친구가 없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는 것처럼 대나무를 닮은 삶은 맑아 보이지만 외롭고 힘들다.

소나무를 좋아하고 대나무를 닮고 싶어 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그렇게 살면 딱 왕따당하기 좋다. 누구나 '예스'라고 할 때 혼자서 '노'라고 말하면 요즘 주류 언론은 그를 왕따라고 말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사는 것을 낙으로 삼으라고 교육받지만 현실과 주류 언론은 묻어가고 편하게 살라고 한다.

시골 대밭 언덕 아래 우물이 있는 작은 집에서 살고 싶다. 방문에 걸어 둔 대발 사이로 댓잎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속을 비우고 대나무랑 오동이랑 소나무랑 친구하며 살고 싶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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