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 약속 깡그리 무시.정략적 판단으로 통합 결정…이성적 판단 필요해

통합 3년째인 창원시가 '분리' 문제까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출범 이후 갈등이 최고조다. 문제의 '마산시 분리 건의안'은 지난달 23일 창원시의회에서 채택됐다. "더는 같이 못 살겠다. 찢어지자"는 결별 선언이었다. 그 뒤 마산과 진해지역 시민단체도 잇따라 '분리'에 동의했다. 통합 창원시의 앞날도 내다보기가 어렵다. 왜 이런 상황이 왔을까. '마산 분리 건의안' 처리 과정에는 의원의 이율배반적 사고가 깔렸었다. 표결 결과는 찬성 42, 반대 9, 기권 1명. "건의안일 뿐"이라며 분리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이 안건에 동의하는 무책임한 의원이 대다수였다. 더구나 통합에 동조했던 시의원이 아이러니하게 '분리'를 외치거나 간접적으로 바라고 있다.

통합 원죄는 누구에게 있나

처음부터 '주민'이 없었다. 마산·창원·진해시 통합은 수년 전부터 주민 입에 오르내린 문제였다. 그럼에도, 주민 의사를 반영할 창구가 없었다. 대의기관인 마·창·진 3개 시의회가 내린 정략적 판단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일부 시의원과 시민단체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 출범과 더불어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이명박 정부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치인의 '합작품'이었다.

지난 2009년 12월 7일 마산·창원·진해 행정 통합안에 대한 가결을 선포하고 있는 마산시의회 노판식 의장. /경남도민일보 DB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 처리 등으로 권경석·김학송·안홍준·이주영 국회의원은 통합을 주도했다. 그때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에는 창원 출신 이달곤 장관이 있었다. 행안부는 마·창·진 시의회와 경남도의회에 통합에 대한 의견을 구했지만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2009년 12월 7일 마산·진해시의회가 찬성 의견을 채택한다. 마산 쪽은 한나라당 의원 중심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재석의원 21명 중 찬성 18, 반대 1, 기권 2. 반면 진해 쪽은 장내가 소란스러울 정도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기립 표결 끝에 출석 13명 중 찬성 8, 반대 5로 역시 가결됐다. 마산과 진해에서 모두 '주민투표'를 포함한 수정 동의안이 발의됐으나 한나라당 의원 머릿수에 막혀 무산됐다.

같은 해 12월 11일 옛 창원시의회가 '주민투표' 약속을 저버리고 찬성 결론을 낸다. 기립 표결로 당시 의장(현 창원시의회 배종천 의장)은 찬성을 표했고, 출석 19명 중 찬성 15, 반대 4로 가결했다. 같은 달 24일 도의회는 상임위 부결과 내부 반발에도 이태일(마산) 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찬성으로 처리했다. 재석의원 52명 중 찬성 36(모두 한나라당), 반대 13(한나라당 6·민주당 2·민주노동당 2·무소속 3), 기권 3(한나라당)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주민 의견을 직접 반영하지 않고 정부와 국회의원에 등 떠밀려 마·창·진 시의회와 도의회는 통합 찬성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거꾸로 정부와 국회의원은 통합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라진 통합 비판 정신

야권과 시민단체,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지방의원까지 통합 반대를 부르짖고 '주민투표'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옛 진해시의회에서 김성일 의원(현 시의회 부의장)은 "행안부는 통합을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로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지방의회 의견 청취로 통합을 마무리하려 한다"며 "행안부가 권력을 앞세워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로 오만불손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옛 창원시의회에서 정영주 의원(현 시의회 경제복지위원장)은 "통합 논란의 원인은 창원 시민과 시의회, 창원시가 송두리째 빠진 채 행안부의 자율을 가장한 졸속 강제통합 때문"이라며 "주민투표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하지만, 통합 후 이런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한 야권 시의원은 "통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없었고, 좀 막연한 반대였다"고 당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야권이 정부와 여당의 통합정책에 대처 못 했다는 뜻이다. 시민단체도 애초에 배제된 탓에 통합되고도 제대로 목소리를 못 냈다.

통합 반대 의사를 보이면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진해지역 의원은 지난해 9월 새누리당에 다시 입당했다. 김성일·김헌일·전수명·이치우 의원으로 일부는 시의회 야권 의원 모임인 민주의정협의회에도 함께했던 이들이다. 통합 반대를 외친 이들이 통합을 주도한 정당에 몸을 담는 모순된 촌극이 벌어졌던 셈이다.

이렇게 통합에 대한 비판은 흐지부지됐지만, 통합을 이끈 세력은 확고하다. 통합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이흥범(새누리당·창원9) 도의원은 "어느 누가 뭐라 해도 통합에 대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광역화가 맞다"며 "힘을 모으면 좋겠다. 갈기갈기 찢어져서 되겠냐"고 말했다. 또 이 의원은 "마산 분리 건의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통합 당시 80%가 넘는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마산 시민이 절대적으로 원한 것이고 어렵게 통합을 만든 것인데, 소지역주의 굴레를 못 벗어나 청사 하나를 가지고 이 난리를 피우는 게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 오후 창원시의회 본회의에서 배종천 의장이 창원시청 소재지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기습처리하자 의장석 위로 뛰어 올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마산지역 의원들. /경남도민일보 DB

'장밋빛 미래' 볼 수 있을까

통합준비위원회나 최근 의회 특별위원회에서 나온 '합의' 사항을 시의회는 모조리 깼다. 합의 내용을 부정하면서 의회 스스로 약속조차 못 지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자신했던 통합의 '장밋빛 미래'는 찾아볼 수 없다. 통합 효과에 대한 해석부터 엇갈린다.

시의회 5분 발언에서 강용범(새누리당·마산) 의원은 "통합 3년 동안 균형발전과 행정의 효율성은 전혀 없고, 간부 공무원만 늘어났다"며 "마산, 진해가 못 살아서 더부살이하려고 통합한 것은 아니다. 창원시가 발표한 마산 부흥 프로젝트 15가지 중 13가지 정도는 통합 전 마산시가 계획했던 사업이고, 70% 이상 민간 자본과 국비가 지원되는 사업이다"고 짚었다.

반면 김동수(새누리당·창원) 의원은 "지역 간 경제력, 인구, 산업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1대 1 통합은 명백한 불평등 통합"이라며 "시의원 정원, 행정동 수, 공무원 정원 등을 인구 비례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침체한 지역을 억지로 떠안게 된 것도 억울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의회가 결단을 못 내리자 통합 창원시 문제는 소위 '중앙' 정치에도 휘둘리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주영(마산합포)·안홍준(마산회원) 의원은 '청사 유치'를 공약했다. 임시 청사를 시청사로 확정하는 조례가 공포를 앞둔 지금 두 의원의 약속도 공수표가 될 노릇이다.

같은 해 12월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통합 창원시에 관한 논쟁은 더 뜨거워졌다.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가 '도청 마산 이전', 무소속 권영길 후보는 '통합 창원시 재분리'를 각각 공약으로 내걸면서 충돌했다.

선거 때마다 통합과 청사 문제는 단골 메뉴로 등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안에서는 곪아 터졌고, 밖에서 서로 치료하겠다고 나서면서 창원시 근간마저 뒤흔들리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해법은 전혀 없는 걸까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창원시 현안 간담회에서 이주영 의원은 "갈등 해소안을 마련해 내놓는 게 이 시점 책무"라면서 "명칭이나 청사는 옛 창원과 마산 사이 안배하는 게 상식과 순리에 맞다"고 했다. 안홍준 의원은 지난 9일 아구데이 행사장에서 "분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의회 의결은 날치기 불법 처리였다"며 "이제는 홍준표 지사와 대화를 많이 해 도청 이전에 힘을 싣겠다"고 말했다.

시의원부터 국회의원까지 통합시 명칭과 청사 문제에 파묻힌 모양새다. 최근 정치인과 지역 원로 등이 모이는 자리의 필요성을 언급한 박완수 시장도 그간 청사 문제에 대해선 "최종 결정은 의회 몫"이라고 넘겼다.

통합 직후 마·창·진 지역 갈등 해소 등을 위해 학계·경제계·문화계 등 전문가 30명으로 꾸려진 창원시 시민협의회는 시정 자문이 주된 역할인데, 청사 문제에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시장이 '갈등 영향 분석'을 하고 사안별로 '갈등조정협의회'를 둘 수 있도록 '창원시 공공갈등 예방과 해결을 위한 조례'도 지난해 6월 만들어졌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전문가는 현재 상황에 통합 장본인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창원대 행정학과 송광태 교수는 "중앙 정치권이 통합 절차를 민주적으로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기로 통과시켰고, 이후 중앙 정치권이 빠지고 지방의회가 매듭지으려다 보니 타협이 안 되는 복잡한 문제가 생겼고 식물의회라는 소리까지 듣는다"며 "원초적인 단서는 중앙 정치권이 제공했다. 중앙 정치권이 욕을 먹어야 할 것을 지방의회가 대신 욕 먹고 있다"고 짚었다.

경남대 행정학과 최낙범 교수는 "본질적으로 통합 창원시 발전을 같이 연구해야 할 시점에 분리 거론은 내년 선거를 앞둔 면피용이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며 "정치인이 '분리'라는 수단으로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청사 문제는 오래 걸리더라도 합의 과정을 거쳐 해결해야 한다. 주민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절차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결정해야 할 일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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