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다음날 아침부터 웃음이 나왔다. 5월 2일 자 <한겨레>에 실린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 '그래도 민주당에 기대를 건다' 때문이었다. 제목 그대로 대선 패배 이후 지리멸렬 헤매는 민주당을 옹호하는 글이었는데, 마지막 대목이 압권이었다. 최근 시중에 떠도는 '3대 불가사의'가 있는데, 박근혜 창조경제, 안철수 새 정치, 김정은 속마음이란다. "민주당은 여기서도 빠져 있"어 희망이 있다는 논리였다.

과문한 탓인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더 의아한 건 민주당이 빠져, 아니 불가사의 목록에서 민주당을 '뺀'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라는 필승 카드가 있었음에도 정권을 헌납한 민주당, 그러고도 "모두가 책임"이라는 교묘한 언술로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는 민주당만큼 불가사의한 존재가 또 있던가.

얼마 전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에 대한 은근슬쩍 견제도 돋보였다. 새 정치를 불가사의화한 것도 그렇고,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 등만 거론한 것, 또 예상되는 '안철수 신당'은 집권 가능성이 없다며 "차기 집권 가능한 유일한 대안 정당"은 민주당뿐이라고 못박은 것이 그랬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오른쪽)과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다음날(3일) <한겨레>를 보니 이번엔 백기철 논설위원이라는 분이 칼럼에서 안철수에 차기 대권 포기를 조언한다. 대권에 집착하면 새 정치는 더 초라해질 것이라는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었는데, 예의 또 민주당이라는 '상수'에 대한 부각이 있다. 성한용 기자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에는 이미 박원순, 문재인이 버티고 있다고 사실상 '엄포'를 놓은 것이다. 벌써부터 5년 뒤 대선에 집단적 관심을 보이는 성급함도 그렇지만, 지난 대선 패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재인을 '득표율 48% 자산' 운운하며 열심히 띄우는 <한겨레>의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누가 봐도 그 득표율의 절반쯤은 안철수의 공일 텐데.

돌아보면 안철수에 대한 <한겨레>의 반감은 일관성이 있다. 특히 칼럼진. 전 편집국장인 성한용 기자는 지난해 5월 '안철수 대통령은 없다'란 칼럼을 통해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대선 후보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장본인이다.

대체 이 뿌리 깊은 반감의 근원은 뭘까. 분명 안철수도 비판받을 부분이 있지만 이렇게 출마 전부터, 그것도 구태나 무능으로 따지면 더 심하면 심했을 민주당을 옹호하면서까지, 심지어 5년 뒤 상황을 앞서 재단하며 '디스(diss)'를 하는 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궁금증을 나름 명징하게 해소해 준 사람은 곽병찬 <한겨레> 논설위원이었다. 지난해 10월 '안철수식 새 정치의 탈선'이란 칼럼을 통해서다. 예의 이 칼럼 역시 "문재인과 대결하는 순간 새 정치는 거품으로 꺼진다"고 밑도 끝도 없이 경고하고 있는데, 더 눈길을 끄는 건 안철수는 민주화세력이 군사정권과 싸우고 있을 때 "출세가 보장된 공부"만 한 "생각없이 살아온" 사람이라는 대목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가 주축인 <한겨레>와 민주당이 공명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젠 그 정도가 지나쳐서 거대한 기득 이익을 공유하는 공동운명체까지 되어버린 느낌이다. 제2당의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움직임은 어떻게든 깎아내리며 오로지 민주정부 10년의 옛 영화 회복에만 골몰하는 '집권' 공동운명체. 물론 민중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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