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잠자리

얼마 전 교실에서 먹줄왕잠자리가 태어났다. 올해 첫 잠자리 우화(羽化) 활동의 결과였다. 2학년 학생들의 눈에 잠자리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날개 달린 잠자리가 나오지?" 탈피각(脫皮殼=곤충이 자라면서 벗은 껍질)을 보는 아이들 눈이 빛난다.

잠자리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렸을까? 어원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중종 때 편찬한 <두시언해> 초간본에 첫 모음을 '아래아'로 써서 '잔자리'로 표기됐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두보의 시를 우리 글로 번역해 실은 <두시언해> 초간본은 1443년(세종 25)에 착수, 38년 만인 1481년(성종 12)에 비로소 간행된 한국의 첫 역시집(譯詩集)이다. 이곳에 잠자리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중엽 이전부터 잠자리는 이름으로 불렀을 것 같다.

잠자리는 잠찌, 짱아, 촐비, 잰잘나비, 천둥벌거숭이 등 많은 방언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책에서 경상도에서는 잠자리를 잘래비라고 부른다는 글을 보았다. 그래서 연못 이름을 잘래비연못이라고 우린 부른다. 하지만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잘래비라는 방언을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서 조사를 해 보았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왜 잘래비라고 불렀을까.

잠자리 탈피각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아이들.

천둥벌거숭이라는 방언은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벌거벗은 몸으로 날아 다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비가 오는 날은 곤충들의 활동력이 떨어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잠자리도 일반적으로 기후와 기온에 많은 영향을 받는 종중의 하나인데 왜 이런 방언이 있을까? 아마도 좀잠자릿과의 된장잠자리가 흐린 날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진화론적으로 본다면 고생대 석탄기 약3억 2500만년 전 지구상에서 날개를 가진 곤충으로 진화한 무리 가운데 최초의 곤충이 잠자리다. 먹줄왕잠자리는 이 긴 역사를 멋지게 이어 주었다. 먹줄왕잠자리의 날갯짓에 봄은 깊어지고 여름이 곧 시작될 것이다. 뜨거운 여름 햇살과 함께 아이들의 가슴 속에서 잘래비연못에서 잡아온 먹줄왕잠자리의 우화 모습들이 작은 추억이 되었다.

/변영호(거제 명사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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