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예총해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 20년이 흘렀고, 그 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체론이 제기됐지만 예총은 아직 건재하다. 그 이유는 뭘까.
예총은 60년대 초 군사정권 주도로 만들어진 후 20여 년간 각종 공공지원을 독점해왔다. 거기에는 예산지원이라는 직접적인 지원 외에도 ‘정치권 진출’이라는 간접 지원도 포함돼 있었다.
결국 대다수의 문화예술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예총이라는 우산 아래 모일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활동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총의 이런 점을 비판하면서 민예총이 만들어진 게 88년 11월이니까, 예총의 독과점은 꼬박 25년에 달한다. 그동안 시스템이 고정되면서 관성이 붙었다. 예술계의 최대 후원자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예총만을 상대함으로써 손쉽게 행정처리를 해온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술정책의 대상은 예술활동 그 자체보다는 ‘특정 단체’였다. 지역문화계에서 이러한 예총 독과점은 아직까지 유효한 형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첫째, 독과점현상이 약화되고 있다. 88년 11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일명 민예총)이 결성되면서 예총이 더 이상 ‘유일한’ 문예단체가 아니게 됐다. 이후 90년대 들어서 만들어진 평론가 중심의 한국예술발전협의회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등도 문화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터넷환경이 보편화되면서 각종 문화예술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있고, 그 활동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특히 진보진영의 문화운동단체인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활동은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문화계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아직까지 예총 독과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예총과 경쟁할 수 있는 다양한 단체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계의 다양화와 선의의 경쟁은 그 자체로 예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예술계의 최고 후원자인 지방자치단체가 행정편의에서 벗어나 공정한 입장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시민과 언론이 이 부분을 감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디지털기술 등이 발전함으로써 기존의 장르 중심적인 전통적 예술구분이 허물어지면서 탈장르화 혹은 장르간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 인쇄기술의 발달이 기존의 운문 중심의 예술을 산문 중심의 예술로, 라디오와 TV와 같은 전파매체의 발달이 ‘문자’ 중심의 예술을 ‘말과 영상’ 중심의 예술로 바꿨듯이, 디지털기술의 발달 또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구조조정’을 이끌어낼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을 입안.집행하는 관청보다는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이 주도할 것이다.
소비자들의 기호가 전통적 범주로 구획되는 예술장르보다는 새롭게 이목을 끄는 예술형태에 기울어진다면,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디지털멀티미디어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영상.음향.스토리텔링 등이 하나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문학.음악.미술.연극.영화 등의 전통적 예술장르가 뒤섞이고 있는 것이다.
예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덩치가 크면 클수록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법. 실제 거대한 공룡 예총이 그동안 보여준 변화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물론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정치불개입을 선언하고(1996년), 예총회장 출신인 신영균 의원이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가 하면(1994년), 문예진흥기금조기폐지 반대운동을 주도하고(2000년), 문화예술기부금 장려법 제정운동을 벌이는 등(2001년) 여러 가지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대증적이고, 개인 의존적이며, 예외적인 조치에 불과한지, 아니면 본질적이고, 조직적이며, 제도적인 변화를 상징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예총은 군사정권에 의해 만들어졌을망정, 창립이후 25년 이상, 지역의 경우 현재까지도 문화예술계를 독점해왔다는 점에서 예총의 미래는 예술계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물론 ‘예총의 성공이 예술계의 성공’, 혹은 ‘예총의 실패가 예술계의 성공’이라는 식으로 공식화할 수는 없다. 다만 급변하는 예술환경 앞에서 예총이든 예술계든 변화의 움직임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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