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군부가 부패사건 연루 의혹으로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 반대파 진영으로 합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군부가 와히드 집권 후 정치·사회 등의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약화됐음에도 불구, 수십년간 권력을 장악한 노하우가 있는데다 혼란 상황에서 치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에 군의 태도 변화 여부는 와히드의 향후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지난 해 4월부터 와히드에 대한 공격 수위를 계속 높여왔음에도 불구,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군부가 대통령 부패 의혹에 대한 국회 특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8일 이후부터 종전의 입장에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와히드대통령은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정치권 공세의 고삐가 한층 강화되던 지난 달 31일 자신의 건재를 과시할 목적으로 “내 뒤에 군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적인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데 이는 침묵을 통해 와히드의 발언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육군 수뇌부들은 비공식 석상에서 “군은 국가와 헌법에 충성할 뿐이지 특정 개인을 추종하는 사병이 아니다”라며 와히드 발언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부의 반와히드 움직임은 조달청 공금횡령과 브루나이 국왕 기부금 증발 사건과 관련, 대통령 연루설을 인정한 특위 조사 보고서를 접수할 지 여부를 묻는 1일 국회 총회 투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상 군과 경찰이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에 이들에게 주어지는 비선출직 국회의원 38명이 보고서 접수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전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국민각성당(PKB)과 일부 군소 정당 소속 의원들이 특위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법률적 하자를 문제삼아 표결 진행을 저지하다가 집단 퇴장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행동은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군출신 의원들이 그동안 국가 정책을 논의하거나 표결로 승인할 때 정부 거수기기능을 자임, 권력을 지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전례에 비춰볼 때 이날 집단찬성 표결은 일종의 반란인 셈이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몰락 후 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취해진 군기능 축소와 예산 삭감, 군.경 분리, 인권유린과 관련한 군인사 사법처리 등에 극도로 불만을 품어온 군부가 반와히드 진영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상황이 ‘실지’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군소식통들은 와히드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혼란상황이 지속될 경우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외견상 침묵으로 일관해온 종전의 모습에서 탈피, 독자적인 입장을 적극 제시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는 국민 대다수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저질러진 인권유린과 부정부패 등에 극도로 분노하고 있는데다 국제사회의 견제가 간단치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쿠데타와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이슬람연구소(IAIN)의 이지우마르디 아즈라 박사가 1일 “군이 쿠데타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가 계속 고조된다면 간접 권력장악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간접 권력장악과 관련, 필리핀 군부가 조셉 에스트라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글로리아 아로요 진영에 합류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지지 대상을 메가와티부통령쪽으로 옮길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마흐푸드 국방장관도 최근 “쿠데타 가능성은 없으나 현재의 혼란 상황이 무정부 상태로 악화된다면 군은 국가통일 유지를 목적으로 모종의 조치를 취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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