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은 대중과 소통하는 치유의 현장”

‘힐링’이 대세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아이템은 ‘힐링’이다. 삭막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힐링을 원했다. 이에 어떤 이는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어떤 이는 취미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힐링했다. 이따금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힐링 방법 중 ‘소통’ 역시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하며 치유하는 일. 감춰왔던 비밀이나,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의문을 던지고 나면 가슴속 응어리는 자연스레 풀린다.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에서 비롯되고 사람으로 해결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방법이다.

법륜스님 강연 / 마산정토회 제공

창원시민에게도 소통을 통한 힐링 기회가 찾아왔다. ‘즉문즉설’ 강연으로 유명한 법륜 스님이 창원을 찾은 것. 그동안 법륜 스님은 전국을 돌며 현대인의 고민과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적 가치관으로 괴로움이 없는 자신과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 만들기 등을 가르쳐왔다. 미리 준비하거나 짜진 대본 없이 현장감을 그대로 살려 오로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는 강연.

지난 4월 5일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희망을 찾고자 청중과 대화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한마당으로 들어가 봤다.

치유는 강연장을 찾으면서 이미 시작

4월 창원은 그야말로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진해구에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벚꽃축전 ‘군항제’가 열리고 있고,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창원대로 양옆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사람들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두꺼운 외투 대신 한들거리는 원피스와 청색 재킷이 거리에 넘쳤다.

강연이 열리는 MBC 경남홀 주변에도 봄은 만연해 있었다. 프로야구 개막과 NC다이노스의 역사적인 1군 첫 경기가 남긴 열기는 여전했고, 주말을 앞두고 봄나들이를 떠나는 듯한 차들은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다.

법륜 스님 강연이 예정된 시간은 저녁 7시. 하지만 강연이 1시간 남짓 남았음에도 강연장 입구는 서둘러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법륜스님 강연 / 마산정토회 제공

강연이 있을 때면 늘 만석도 모자라 무대 위까지 꽉꽉 채우고, 그러고도 돌아서는 발길이 있는 만큼 입장 경쟁은 치열했다.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질문거리를 생각하고 나누면서 곧 펼쳐질 강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동안 속으로만 품어왔던 고민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 혹 질문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공유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고 자산이었다.

창원 마산합포구 석전동에서 왔다는 한 주민은 “봄과 어울리는 강연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새 생명이 싹트는 봄처럼 오늘 강연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얻어가겠다”고 했다. 창원 의창구 용호동에서 온 부부는 “부부동반으로 힐링하고 가겠다”며 “오늘 강연을 통해 사랑도 더 깊어질 듯하다”고 전했다.

강연장 입구에 마련한 안내데스크는 예정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차 활기를 띄었다. 안내데스크에서 나눠주는 접수증에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기재하고 나면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안내데스크 한편에는 스님이 쓴 책이 진열해 있었고, 지난 강연 모습을 담은 사진도 비치해 두었다.

강연이 끝나고 있을 ‘사인회’를 예상하며 스님이 쓴 책을 들고 온 사람도 더러 보였다. 포스터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 주최 측에서 배포한 팸플릿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 등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제 각각의 모습으로 강연을 기다렸다. 소풍 전날 밤 잠 못 드는 어린아이처럼 강연장을 찾은 이들은 모두 들떠있었다. 어쩌면 이미 힐링은 시작됐는지도 몰랐다.

법륜과 함께하는 희망세상만들기

‘법륜 스님 희망세상만들기’. ‘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이번 강연은 전국을 돌며 진행 중이다. 강연은 이미 2011년에 130회, 2012년에 300회를 이어오며 명실 공히 대표적인 ‘희망강연회’로 자리 잡았다.

지난 3월 20일부터 진행한 올해 강연도 벌써 8번째 순서였다. 여태껏 스님이 강연을 통해 만난 사람만도 30만 명에 이른다. 많게는 하루에 두 번씩 강연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온 스님은 어느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희망멘토’가 되었다. 올해 강연 역시 오는 6월 18일까지 총 50차례에 걸쳐 빽빽하게 잡혀 있다. 그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듣지 않으면 먼 길을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6시 20분을 넘어서자 강연장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법륜스님 강연 / 마산정토회 제공

이번 강연이 열리는 MBC 경남홀은 총 1170석 규모의 종합 공연장이다. 고작 한 사람이 이 넓은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하지만 기우였다. 7시가 가까워져 오자 1층 710석은 빈틈없이 가득 찼다. 강연장을 찾은 사람 중에는 유독 40대 주부가 많았다. 한 가정과 사회 모두를 책임지는 만큼 고민도, 아픔도 많기 때문일까.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채운 그들은 비교적 차분한 자세로 자리를 지켰다. 다음으로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많았다. 답답한 양복을 벗어 던지고 편안한 복장으로 강연장을 찾은 이들은 표정은 변화 없지만 눈빛만은 또렷하게 유지하며 강연을 기다렸다.

본격적인 강연에 들어서기 전, 무대 위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스님의 이전 강연 영상이 나왔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는 스님 모습은 본 강연을 향한 기대감을 한껏 북돋았다. 이어 이번 강연을 주관한 ‘마산정토회’에서 율동과 노래로 분위기를 띄웠다.

곧이어 강연을 알리는 사회자 멘트가 이어졌고, 법륜 스님이 따뜻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원래 저녁 강연이 있으면 저녁 식사를 잘 못하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도착해 어시장에서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왔습니다. 다들 저녁 식사는 하셨나요?”

가벼운 인사말로 강연 시작을 알리는 스님. 363㎡(110평) 남짓한 무대 위에 홀로 올랐지만, 무대는 결코 허전해 보이지 않았다.

‘즉문즉설’, 소통하는 힘

법륜 스님 강연에서는 평균 8~10명이 질문한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고민부터,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는 물론 신분이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될 심각한 이야기도 오간다. 당연히(?) 미리 짜인 대본은 없다. ‘무슨 질문 하실 겁니까?’라는 대화조차도 오가지 않는다.

강의 시작 전 율동/마산정토회 제공

순서를 기다렸다가 마음 편하게 스님과 대화하면 그만이다. 질문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는 ‘부지런함’뿐이다. 이는 이 날 강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자는 강연장에 도착하는 즉시 주최 측에 얘기한 뒤, 지정한 좌석(질문자석 혹은 앞에서 3번째 줄 이내 아무 곳)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됐다. 그리하여 최종 선택(?)받은 사람은 모두 8명. 늦게 질문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으나, 시간상 모두 허락할지는 미지수였다. 우선은 예약 질문자들이 비친 정성에 보답할 차례였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받기 전, 스님은 진리 하나를 설법했다.

“사람은 인연 따라서 이것이 되기도, 저것이 되기도 합니다. 다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부처님은 이를 일컬어 ‘천백억화신(헤아릴 수 없이 변화하는 부처의 화신)’이라 하셨습니다.”

제아무리 어려운 법문이라도 스님을 거치고 나면 일상적인 이야기로 변했다. 청중 눈높이에 맞춰 전해지는 스님 말씀은 왜 그가 이토록 사랑받는 희망멘토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곧이어 즉설즉문을 시작했다.

“저는 늘 외롭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저와 제대로 통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스님과는 소통이 가능할까요?”

스님은 30대 남성이 던진 다소 엉뚱한 질문에도 진지한 자세로 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웃음도 잊지 않았다.

“사람은 아무리 많이 만나도 외로운 법입니다.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죠. 예를 들어….”

스님 말 속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고집이 센 사람도, 혹 ‘말빨’로 스님을 넘보려 했던 사람도 스님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수긍하며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스님이 지닌 능력이자 매력이었다.

“고등학생 아들과 소통이 안 됩니다.”

강연장을 찾은 대다수 학부모가 격하게 공감했던 질문에도 스님은 핵심을 간파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억지 소통은 안 됩니다. 선입견을 버리세요. 그리고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우선은 아내와 소통을 잘해야겠네요.”

질문이 끝나고 대답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법륜스님 강연 기념촬영 / 마산정토회 제공

관객들은 스님 말씀에 따라 울고 웃으며 강연을 즐겼다. 무겁지 않게, 하지만 뼈가 있도록. 스님은 가볍게 뱉는 말 한마디에도 깊은 성찰과 고민을 담았다. 유아 문제로 힘들어하던 한 질문자에게는 자연에 빗대어 설명해주기도 했고, 폐경기가 찾아와 고민인 한 주부에게는 과거 상담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마다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우리의 고통은 어리석음에서 온다’와 같은 힘 있는 말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즉설 속에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스님은 ‘손 떨림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다’는 40대 남성의 고백에 ‘나도 고추 알레르기가 있지만 계속 부딪혀본다’는 자신의 경험담으로, ‘가족·친지 문제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60대 남성의 고민에 ‘우울증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고 약물치료 해야 한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약한 8명이 모두 질문을 마치자 강연을 약속한 두 시간이 다 됐다. 누군가는 아쉬움에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을 이어가려 했지만, 스님은 묵묵히 마지막 설법을 준비했다.

즉문즉답이 아닌 ‘즉문즉설’

“왜 즉문즉답이 아닌 즉문즉설인 줄 아십니까?”

본 강연에 앞서 스님이 던진 질문에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는 듯했다. 과연 큰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강연이 마칠 때쯤 모두가 그 속에 담긴 뜻을 깨우쳤다. 법륜 스님 강연은 결코 '해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원칙. 이것이 곧 스님이 추구하는 힐링이었다.

“인생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답이 아닌 즉설입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이는 스님이 전하려 하는 진리도 담고 있었다.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문제이고 이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다 알 수는 없겠으나, 진리는 분명 가까운 곳에 있었다. 긍정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힐링이고, 휴식이었다. 강연이 모두 끝나고 마음 속 짐을 다 내려놓은 듯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밝아진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연장을 나섰다.

‘우리 애는 학교는 잘 다니는데 꼴찌예요’, ‘우리 애는 꼴찌에요. 근데 학교는 잘 다녀요’. 모두의 가슴 속에 스님이 남긴 말 한마디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같은 듯 다른 두 말 속에 힐링이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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