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아동복지시설 '예닮이네' 조숙 원장

"저는 언제나 우두커니 이 자리에 서 있을 겁니다. 나무처럼 늘 이 자리에서 아이들이 찾을 수 있도록 말이죠."

조숙(60) 씨는 '엄마'를 자처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상처입은 아이들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사랑으로 키웠다.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함박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마을회관이 있고, 바로 맞은편에 마당 딸린 집이 하나 있다. 아동복지시설을 찾았지만 그냥 가정집이다. 마당에는 80여 가지 야생화가 어우러져 울타리 안에 오순도순 모여있다. 마치 이곳 아이들이 각자 다른 삶의 공간에서 지내다 모인 것처럼 말이다.

'예닮이네' 원장을 맡은 조숙 씨는 "우리는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며 "아이들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공동체 속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아동복지시설 한 형태인 '그룹홈'은 가족이 일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아동을 양육할 수 없게 되는 경우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아동에 대한 개별 서비스로 보호 양육하는 곳이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관계 형성을 하는 부모라는 대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꽤 깊습니다."

처음 새로운 가족을 만나면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손에 쥔 모래'와 같이 조 원장을 애달프게 했다.

   

조숙 씨는 서른한 살이 되기 전에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일했던 그녀는 한 아이를 만나고 많은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과자 봉지를 절대 열지 않아요.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는 엄마가 과자를 사주며 다 먹기 전에 돌아온다는 말을 기억하고 매일 같이 그곳에서 엄마를 기다렸어요."

그녀는 거제도에 있는 장애아동시설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나러 갔다가 버스정류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가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후원자로 봉사를 하다가 결국은 공무원직도 버리고 수많은 아이를 안고 키워냈다.

"15년 정도 큰 시설에서 일하다 보니 스스로 느끼는 한계가 많았어요. 더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소규모 그룹홈을 만들어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으로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죠."

마흔일곱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조숙 씨는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공부는 필요해서 하고,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조숙 씨는 "OECD 국가 중에 대형시설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가정이라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커다랗게 시설 간판이 걸린 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한 정거장 앞에 내려 걸어온다. 그렇게 자신이 있는 공간을 감춘다는 사실을 알았던 그녀는 그룹홈 형태의 아동복지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손자도 있지요. 제일 큰 딸이 결혼을 해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일 행복합니다. 입덧이 심해 제대로 먹지 못하다 친정인 이곳에 와 제가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로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울 때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거죠."

아이들을 키우면 학원비에 문화생활비에 생활비가 빠듯하다. 상대적으로 대형 시설보다 후원자나 봉사자 손길이 적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공간 특성상 시설이라고 마냥 알리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학습지도 봉사나 물품 후원이 가능하다. 또한, 연말정산 시 소득공제가 가능한 장학 후원은 '농협 801170-51-043553 예닮이네'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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