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건국 후 최초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대통령직을 도중 하차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출항한 지 15개월만에 와히드호를 난파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암초는 ‘블록게이트’ 및 ‘브루나이게이트’로 불리는 조달청 공금횡령과 브루나이 국왕 기부금 증발사건으로 이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블록게이트.

블록게이트는 대통령궁 전속 안마사 출신의 알립 아궁 수원도가 지난 해 1월 분리독립 문제로 유혈사태를 빚고 있는 수마트라 북단 아체에 대한 와히드의 구호용 통치자금에 필요하다고 속여 조달청 복지기금 350억루피아(44억원)를 횡령한 사건.

수원도는 유숩 칼라 당시 조달청장에게 기금 인출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뒤 다시 사푸안 차장에게 접근, “와히드의 특명을 받고 왔다. 통치자금을 지원해주면 차기 인사 때 청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고 약속, 거액의 공금을 건네받았다.

그는 당시 대통령궁 전속 안마사 신분임에도 불구, 와히드와 사적으로 수시로 접촉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고 사기행각은 적어도 와히드 재임중에는 완전히 묻히는 듯 했다.

특히 와히드가 90년대 중반 민영항공사 설립을 위해 공동투자하면서 알게된 수원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진 것으로 신뢰한 덕택에 한때 그는 와히드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히기도 했다.

그의 범죄 행각이 의외로 빨리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와히드가 지난 해 4월 인도네시아 최대 정당 민주투쟁당(PDIP)과 제 2당 골카르당 출신 각료 2명을 일방적으로 해임, 해당 정당에서 강력 반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거국내각이 균열현상을 빚으면서 와히드가 측근 인사를 내세워 천문학적 액수의 국고를 착복했다는 소문이 정치권과 언론사 등을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졌으며 급기야 경찰이 사건 발생 4개월여 뒤인 5월 25일 수사계획을 공식 발표, 이 사건의 윤곽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범행 후에도 권력층 인사들과 공개적으로 만나는 등 자카르타 시내를 마음껏 활보하던 수원도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심상찮은 것으로 판단, 경찰의 수사가 발표되기 직전 제 3국으로 도피했다.

정치권은 와히드가 이 사건에 처음부터 관여했으며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해외도피를 사주했다고 연일 정치공세를 퍼붓다가 잠적 후 수개월만에 검거된 수원도가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자백했음에도 불구,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정치권은 와히드가 지난 해 국민협의회(MPR) 연례총회가 종료된 뒤 단행한개각에서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무더기로 입각시킨데 분노, 국회 차원에서 블록게이트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일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와히드와 수원도, 사푸안 전 조달청 차장 등 30여명을 증인으로 채택한 뒤 10월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해 조달청 관련 문서와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대통령이 공금 횡령과정에서 ‘부적절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냈다.

와히드가 범죄 발생 직전 사푸안 차장과 만나 아체 구호기금 조성과 관련된 대화를 나눈데다 인출된 공금이 자신의 측근 사업가 등 민간인 4명에게 넘겨진 점 등으로 미뤄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됐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브루나이게이트는 와히드가 지난 해 중반 정치권의 공세를 피해 결백을 강조하기 위해 “아체 구호용으로 브루나이 국왕으로부터 이미 돈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조달청 기금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불거졌다.

정치권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삼기 시작했다. 개인 자격으로 돈을 받았다면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대통령궁에 대한 지원이라면 국고에 환수시켜야함에도 불구,이 돈의 전달 시기와 사용처, 용도 등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것이다.

국회는 브루나이게이트의 경우 대통령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경고할 정도의 사안은 되지만 탄핵 사유는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 조만간 와히드에게 발부할 해명요구서에 블록게이트에 대한 문제를 집중 거론할 계획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