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편의점 이야기] (2) 달콤한 계약

직장생활 20여 년 동안 5억 원 넘는 돈을 모았다. 이 돈이 없어지는 데는 10년이 채 필요하지 않았다. PC방·곰장어 전문식당·돈가스집·통닭집을 거치는 과정에서 남은 돈은 3000만 원뿐이었다. 집도 월세로 옮겼다. 통닭집 배달 일을 하다 사고도 당해 몸도 성치 않다.

2011년 가을. 병상에 있던 김현우(가명·57·창원시) 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통닭집을 하기 전 편의점에 관심을 뒀었다. 제대로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큰 욕심은 없었다. 베트남인 아내, 5살 된 아이가 밥 굶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ㄱ 편의점을 선택했다. 조카가 다른 곳에서 그 편의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 이미 저장해둔 번호가 있었다. '점주님 모집합니다'라는 펼침막에서 봐둔 ㄱ 편의점 개발담당 직원 번호였다. 개발담당 직원은 점포 수를 늘리는데 공을 들인다. 스스로 문의해온 김 씨 같은 사람은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개발담당 직원은 본사로부터 인정받는다.

그 해 12월, 김 씨는 개발담당 직원과 마주했다. 직원의 설명이 시작됐다. 가맹형태는 A타입·B타입 두 가지였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가게 세 점주 부담 여부' '매출이익 분배율' '계약기간'이었다. 개발담당 직원은 A타입이 일반적인 형태라며 이를 권했다. "A타입은 계약기간이 5년입니다. 가게 얻는데 들어가는 보증금·권리금·월세 등 임차비용은 가맹점주 부담입니다. 대신 매출이익 분배율이 높습니다. 가맹점주 쪽 몫이 최소 65%에서 최대 85%입니다."

다른 프랜차이즈도 계약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루 매출은 최소 120만 원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평균 마진율은 30% 정도로 잡으면 되고요."

김 씨는 머리를 바삐 움직였다.

'매출 120만 원에 마진율 30%…. 그러면 하루 순이익 36만 원, 한 달이면 1000만 원, 여기서 최소 65%면…. 650만 원은 남겠구나!'

   

인건비·관리비를 덜어내야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더 솔깃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영업지원금이라는 게 있습니다. 장사가 안되면 본사에서 2년간 월 최대 500만 원을 지원해 줍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전에 했던 통닭집보다야 훨씬 낫겠다 싶었다. 배달할 필요 없이 계산대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난 실패 경험은 김 씨를 제법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편의점을 하고 있던 조카를 찾았다. 조카는 김 씨가 제안받았던 것과 다른 B타입이었다. '어떤 자리에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충고를 했다. 다른 지인들에게도 의견을 구했지만 '신중히 판단하라'는 정도였다. 등 떠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택은 김 씨 몫이었다.

주저하는 사이 개발담당 직원으로부터 연일 전화가 왔다. 하루 10번 넘게 올 때도 있었다.

"연말에는 창업 조건이 더 좋습니다. 이왕 할 거면 지금 하는 게 좋습니다."

자기 점포 아닌 사람은 본사에서 추천하는 곳에 의지해야 한다. 김 씨는 본사에서 추천하는 장소 두 군데를 둘러봤다. 권리금 부담이 컸다.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해를 넘겨 2012년 2월로 접어들었다.

본사에서 다시 두 군데를 추천했다. 한 곳은 유흥가였다. 유동인구가 많기는 하지만, 그만큼 편의점도 이미 들어선 상황이었다. 이보다는 1500가구가 입주해 있는 아파트 쪽에 마음이 갔다. 개발담당 직원과 현장에 나갔다. 점 찍어 둔 가게는 29.75㎡(9평)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도 그리 많이 오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 길 건너편에 아파트 입구가 있다는 점은 괜찮았다.

'대기업이 하는 일인데 시장 조사는 철저히 했겠지. 확신 없는 곳에 문 열 리 있을까.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본인 결정에 대한 합리화였다. 김 씨는 마음을 굳혔다.

이제 돈이 문제였다.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1억 원이 필요했다. 점포 전세금 5000만 원, 권리금 2500만 원, 가입비·상품보증금·소모품에 들어가는 기본비용 2150만 원 등이었다. 3000만 원 넘는 인테리어 비용은 본사 부담이었다.

김 씨가 쥐고 있는 돈은 3000만 원이었다. 조카한테 빌려준 돈 1000만 원을 받았다. 신용이 좋지 않아 은행대출은 꿈도 못 꾼 지 오래됐다. 아내 명의로 햇살론 대출 2000만 원을 받았다. 그래도 부족했다. 친구한테 손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4000만 원을 빌려 주었다. 친구도 대출한 돈이었다. 제3금융권을 통해서도 조금 충당하니 근근이 맞춰졌다.

점포 계약에 들어갔다. 가맹계약서는 50페이지에 달했다. 들여다보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개발담당 직원이 하는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개발담당 직원은 가맹계약서 한 장 한 장에 도장 두 개씩을 찍었다. 각각 본사와 김 씨 것이었다. 이 내용을 다 읽어봤다는 증명이었다.

계약을 끝낸 지 10일 만에 인테리어공사가 완료됐고, 물건이 진열됐다. 2012년 2월, 김현우 씨는 그렇게 '편의점 가맹점주'가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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