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딸 김나원이 쓰는 어머니 김현숙 이야기

17살 꽃 같은 나이에 회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노력하고 달려오신 우리 어머니.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용기가 부족한 나에게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줄 테니 도전해보라"고 항상 격려해 주시는 어머니 김현숙(51) 씨. 어머니는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그분의 삶을 딸 김나원(24)이 되돌아보고 싶었다.

-엄마, 17살에 취직했어? 어떻게 그리 빨리 취직 한 거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 형제가 많잖아.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두 여동생까지 있다 보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바로 취직을 해야 했지. 사실, 회사에 가면 보리밥이 아니라 쌀밥도 주고 평생 먹어보지 못한 우유에 빵까지 준다는 말에 취직을 결심하게 된 것도 있어. 어쩌면 난 우리 엄마의 꼬임에 넘어간 건지도 모르겠어. 그땐 어렸었지."

-일을 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고등학교에 다녔어?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일년 동안은 일만 하고 학교는 상상도 못했었거든. 그런데 주말에 집으로 가는데 우연히 버스에서 친구를 만나게 됐어. 교복 입고 있는 모습이 정말 부럽더라고. 그때 내 모습이 정말 공순이 같아서 부끄러웠어. 그래서 회사로 돌아가 바로 학교 다닐 마음을 먹었지. 일하면서 야간 학교에 다닌다는 게 정말 힘들었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했는데 마음 한편에는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라고 항상 다짐하고 있었던 덕분에 꾹 참고 다닐 수 있었지."

지난해 함께 여행을 떠난 부모님.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

"아빠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 집안 언니 소개로 만나게 됐어. 지금 너희가 생각하는 소개팅 같은 게 아니라 중매에 가까웠지. 딱 한 번 만났는데 너희 외할머니가 회사로 전화하신 거야, '결혼해도 되겠다. 사람이 참 좋고 성실해서 너 굶겨 죽이지는 않겠다'면서…. 그래서 한 번밖에 보지도 않고 바로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들었어?

"한번 봤는데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어. 사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기도 했어. 선보러 오는 자리에 회사 작업복을 입고 왔었거든. 네 외할머니 눈에는 그 모습이 더 성실해 보였고 책임감이 있어 보였다고는 하는데…. 엄마 눈에는 뭐…. (웃음)"

-대우그룹이 그 당시에도 참 큰 그룹이었잖아. 왜 그만둔 거야?

"옛날에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크게 없었어. 여자는 집안 살림을 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도 했고, 때마침 임신도 해서 겸사겸사 그만뒀어. 지금 같았으면 육아휴직을 내고 다시 일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아쉽지."

-첫째가 아들이었잖아. 기분이 어땠어?

"아들을 떠나 내 핏줄이라는 생각에 참 신기했지. 너희 할머니께서 참 좋아하셨어. 그때 시어머니께서 우리 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춤이라도 추고 싶은데 큰 며느리가 서운할까 표현도 잘 못 하겠소. 정말 고맙소'라고 그러셨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었어?

"그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너희 오빠가 태어나서…. 뭐 지금 생각해 보면 학원 같은 건 억지로 보내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일 최대로 밀어주면서 좀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어.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 다른 애들이 학원 다닌다고 하면 가라고 떠밀게 되더구나. 웅변·태권도·피아노·글짓기·미술·바이올린 학원까지…. 안 보내 본 데가 없는 거 같네. 힘들었지?"

-행복하고 즐거웠을 때는 언제야?

"너희가 태어났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식상하니까 패스! 전셋집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내 집 장만했을 때 행복했지. 그리고 너희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봉사위원도 되고, 상도 받아오고 할 때가 좋았지. 상 받아 온 날이면 항상 외식했던 거 기억나?"

-오빠와 나를 키우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은 없었어?

"사실 도예를 배우고 싶었는데 너희가 초등학생이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결국 못했지. 그래서 아직 도자기나 예쁜 그릇에 많이 집착하나 봐. (웃음)"

-우리가 좀 크고 나서는 왜 취미활동 안 했어?

"아우! 너희가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는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취미활동은 꿈꿀 시간도 없었어. 작은 회사에 나가 보기도 하고 일을 많이 찾아다녔지.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와 사업을 살짝 구상했지."

-아! 그래서 원룸 지은 거야?

"네 큰아버지 조언도 있었고, 너희 대학 등록금 걱정에다 노후대책 마련으로 시작하게 된 거지. 사실 172㎡(52평) 아파트 살았을 때는 넓어 좋았지만, 달랑 4명인데 그렇게 큰 집에 산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잖아? 그래서 집 팔고 원룸 지을 결정을 하게 됐어. 너희가 살면서 언제 그런 아파트에 살아보겠어?"

-원룸을 경영하면서 힘들지는 않았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 부동산에 관해서 알고 있는 지식도 없었으니까 막막했지. 방 얻으러 오시는 부모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학생들 대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3년 정도 지나다 보니 점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어. 이젠 재미있지."

-엄마 이제 다른 일은 해 보고 싶지 않아?

"황토집을 짓는 게 지금 목표야. 너도 알다시피 아빠가 약초에 관심이 많잖아. 그래서 약초업에 뛰어들어 볼까 해. 더덕도 심고, 도라지도 심고, 석류나무도 심고, 콩도 심어서 수확하는 기쁨을 느껴보고 싶어. 염소도 키우며 그렇게 살고 싶어. 이제 너희 아빠 꿈도 이뤄 줘야지."

-인생 선배로서 자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없어?

"한 가지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용기 있게 도전하고 집중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성공하더라. 하고 싶고, 해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용기 내 최선을 다해봐. 분명히 된다. 뭐 실패하면 젊은 나이니까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후회하지 않게 부모한테는 잘해야 한다. (웃음) 한 번 가면 안 오니까 잘해라. 무슨 말인 줄 알지?"

-마지막으로 인터뷰해본 소감은?

"아이고…. 이거 아는 사람이 읽어볼까 걱정이다. 내가 야간고등학교 졸업 한 거 일급비밀이었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폭로하게 되다니. 뭐 아무튼 내가 살아온 인생을 이렇게라도 한번 되돌아보니까 앞으로 더 또록또록하게 살아야겠다는 느낌이 팍팍 드네. 51년 인생인데 이렇게 할 말이 없다니, 인생 허투루 산 기분이 조금 드네. 넌 또록또록하게 살아. 엄마가 하는 진심 어린 충고야."

/김나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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