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 손녀 김가은이 쓰는 할머니 이복순 이야기

손녀 김가은(19)이 할머니 이복순(79) 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주 앉았다. 나와 할머니는 딱 60살 차이 난다. 할머니는 1935년 출생이고, 나는 1995년에 태어났다. 우리 집에 돼지띠가 두 명이라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올 거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이제 많이 늙으신 우리 할머니.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는 탓에 나와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거의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네 자녀를 키우시고, 그 중 막내인 우리 엄마의 두 자녀인 나와 태한이까지 키워주셨다. 나는 그럼에도 평소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 한번 제대로 못 해 드렸다. 할머니께 드리는 작은 선물의 의미로 이 인터뷰를 시작한다.

-할머니,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이제 늙어서 힘도 없고 여기저기 다 쑤셔. 특히 다리가 아프네. 아침에는 집 거실에서, 낮에는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데 그걸로 운동이 되나 모르겠네."

-어릴 때부터 저희 남매를 오랫동안 키워주셨는데, 요즘 저희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저희를 키우면서 가장 힘드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너희 둘 다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고 기쁘다. 너희 둘이 유치원 다닐 때 같이 폐렴을 앓아 함께 입원했을 때가 제일 걱정되고 힘들었지. 그래도 며칠 만에 다 낫고 그 뒤로 크게 아프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갓 태어난 나를 안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 어린 시절은 어떠셨어요?

"할머니 어린 시절이야 다 같이 잘 못살고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지. 그런데 17살 때 6·25 전쟁이 났지. 나는 7남매 맏이라 막냇동생을 업고 함안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갔지. 거기서 주먹밥을 얻어먹으며 말할 수 없이 고생했어. 수용소 바닥에서 가마니 깔고 자고…. 전쟁이 끝나 다시 함안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지. 그 위에 다시 집을 지어 살았어. 요즘에도 뉴스에서 '전쟁'이란 말만 나와도 가슴이 철렁해. 내 평생에 그런 힘든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우리 태한이 군대 갈 나이 되기 전에 통일되면 좋을 텐데 말이다."

-저희 남매는 할머니가 해주신 밥과 간식을 먹고 이렇게 자라왔는데, 할머니 어린 시절에 드신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뭔가요?

"보릿고개라고 들어봤지? 보릿고개에는 보리를 갈아서 죽을 쑤어 먹고 살았어. 지금은 건강을 위해 보리랑 현미를 먹는데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단다. 감자·고구마도 많이 먹었고, 산에 가서 칡뿌리 캐다 먹고, 지금처럼 봄엔 진달래꽃 따다가 화전 부쳐 먹은 것도 생각나네. 요즘 애들이 많이 먹는 피자나 햄버거보다 더 맛있고 몸에도 좋은 것들인데."

-요즘은 저도 학교에서 늦게 집에 오고, 동생도 학교 기숙사에 있어서 집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잖아요. 할머니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식구들 다 나가고 나면 설거지하고, 청소도 살살 하고, 텔레비전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 아파트 주변을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 것도 많이 해.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서 다른 할머니들이랑 수다 떨며 재미있게 보내. 다행히 주변에 나처럼 손자 키우며 살림 도와주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만나면 재미있어. 속상한 일 있어도 식구들한테는 말하기 어렵지만 같은 처지 할머니들하고 마음이 잘 통하거든."

할머니와 함께 거실에서 찰칵.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할머니들이 주변에 많으셔서 좋으시겠어요. 그 할머니들 가운데 친한 친구분들 얘기 좀 해주세요.

"친정엄마가 밥도 배불리 못 드시고 일찍 돌아가신 친구가 있어. 지금도 그 친구는 자기 엄마가 살아계시면 흰 쌀밥 한 그릇 가득 담아 드리고 싶어해. 계 모임에서 맛난 거 먹으러 갈 때마다 그 얘기를 자주 했어. 이 좋은 세상 못 보고 일찍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맘에 걸린다고. 참 마음이 아프지. 근데 그 친구도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자주 못 만나. 다들 몸이 건강해아 할 텐데…."

-엄마가 일하시는 분이라 요즘도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데,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아무것도 안 도와줘도 돼. 대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학교 잘 다니는 게 할머니 도와주는 거야."

-할머니,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꼭 해보고 싶으신 일 있으세요?

"집 근처에 노래교실이 있으면 가서 배우고 싶구나. 신 나게 노래도 부르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

할머니와 인터뷰하면서 들은 얘기 중에는 예전에 들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새삼스럽게 할머니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께서 숨겨놓은 이야기보따리가 한 아름은 될 것 같다. 평소에 할머니 말씀이 잔소리로 들려서 건성으로 들은 적도 많았는데, 우리를 걱정하시는 마음도 진심으로 다가온다.

'할머니,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서, 저랑 태한이가 대학가고 결혼하는 것까지 지켜 봐주세요.'

/김가은 객원기자(마산 성지여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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