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맛 만든 환상의 파트너…신선한 식재료가 좋은 요리의 출발점

국내 미디어는 연일 음식 관련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매일 아침과 저녁 시간대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이색적인 맛집 찾아내기에 혈안이다. 반대로 늦은 밤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식품업자나 음식점주들이 행하는 비양심적 음식 상행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경각심을 심어준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시민들의 식량주권 의식이 한층 높아진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식량주권 의식이 발현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연원을 따지고 보면 지난 2000년대 중반 전 세계에 불기 시작한 '참살이'(웰빙) 열풍 덕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음식 칼로리 수치를 시작으로 당 함량, 나트륨 함량 등 세세한 부분까지 사람들 관심이 미치기 시작했다. 흔히 먹는 채소나 과일, 육류의 생산 및 가공 과정에 대한 정밀 검증 작업 또한 필수가 됐다. 저급한 중국산 먹을거리와 사스나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신종 질환 창궐 등 각종 이슈가 끊이지 않고, 일본 방사능 유출 사태로 불안감이 높아진 점도 음식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했다. 덕분에 국내 친환경 식품 시장 규모는 경기 침체에도 높은 성장세에 있다. 또, 도시 기준 6가구 중 1가구는 친환경 전문 매장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음식의 맛과 자신의 건강을 결정짓는 데 원재료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많은 시민이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맛집 취재를 가면 기자가 음식점주에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식재료는 어디서 들여오세요?" 이럴 때 돌아오는 대답은 열이면 열 '시장'(市場)이다. 어느 누구 하나 지역 대형마트에서 재료를 들인다는 사람은 없다. 특히 마산 내서와 창원 팔룡동, 진주 초전동처럼 농산물도매시장이 있는 지역은 유통 단계가 한층 단순화돼 신선도 등에서 더욱 믿음이 가기 마련이다. 늘 새로운 물자가 모이고 덕분에 좋은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이야말로 식당을 운영하는 데 더 없이 요긴한 존재인 것이다. 마산 창동에서 '할매장어국'을 운영하는 이연숙 사장은 "지척에 마산어시장이 있다는 게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재료 떨어질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고 말한다.

   

단순히 가까운 시장이라고 해서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브랜드도 중요하다. 창원 사림동에서 보리밥 쌈 전문점 '토궁'을 운영하는 조혜정 사장은 가까운 상남시장이나 봉곡시장이 아닌 마산 역전시장이나 어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보고 사들인다. "새벽 5시에 마산 역전시장, 어시장에 직접 가서 하루 동안 쓸 분량만 사옵니다. 한번은 나물을 재어 두고 써 봤는데 도통 원하는 맛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대체로 창원보다 마산지역 전통시장이 물건도 많고 신선도가 뛰어난 편입니다.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매일 아침 마산에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이 있다. 낯선 곳에 가서 맛집을 찾으려면 꼭 시장 근처 식당을 탐색해보라고. 진주 중앙시장 내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제일식당'과 생선알 내장탕으로 유명한 '송강식당'이 그렇다. 함양중앙상설시장 바로 옆에 있는 '함양집'과 남해읍시장 안 '봉정식당'도 마찬가지다. 이들 식당은 대개 하루 장사할 양을 미리 들여놓고, 그날 찾아 온 손님 수에 따라 모자란 것이 있으면 인근 시장 내 점포에 가서 물건을 더 들인다.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원산지를 확인하며 들여오니 질 나쁜 물건을 들일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신선도가 보장되니 음식 맛이 더 풍부해지는 것도 불문가지다.

식재료를 어디서 사오는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산 지역과 생산자 등을 자세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원재료가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서 들어오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소비자 주권 차원에서 그리고 음식점이 가진 신뢰성을 담보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많은 음식점이 아직도 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선호하고 또 구매한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 주변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들이 우후죽순 늘어서는 것만으로 그 원인을 찾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대다수 음식점이 시장 물건을 사랑하듯이 시장도 이들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맛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황교익 씨는 결국 시장이 한국 슬로푸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전통시장에서 국밥을 먹었다. 같은 식당에 먼저 온 손님이 간재미 무침을 시켰는데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자 주인에게 재촉을 했다. 이때 주인이 하는 말이 '지금 껍데기 벗기러 갈 겁니다'였다. 나는 이 시장 어물전에서 싱싱한 간재미를 본 터라 내 앞에 놓인 국밥이 영 맛없어졌다. '간재미는 지금이 제철인데…' 하며 국밥 국물로 입맛을 다셨다. 이를 보며 전통시장 안 그리고 시장과 가까운 식당들이 시장이라는 환상의 환경을 활용하지 못하고 대충의 식재료로 대충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짜증이 났다. 시장은 지역의 식재료가 다 모이는 곳이니 그 시장 안과 근처 식당들은 기획하기에 따라 진정한 슬로푸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음식점과 시장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좀 더 발전적으로 상호 공생하는 물적 토대를 만들었으면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시장 가까이에 있는 음식점 간에 협약을 맺어 이 시장에서 음식점주가 물건을 사면 가격을 좀 내려준다든지, 좋은 제품만 엄선해 팔겠다는 양심 서약을 하든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음식점과 시장의 신뢰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도 맛있는 음식을 보다 안심하고 먹을 길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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