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43) 김용한 밀양 그린씨드 대표

이름만큼이나 예쁜 감자를 만났다. 민서. 밀양시 하남읍 그린씨드 김용한(58) 대표가 육종한 품종이다. 민서는 눈이 얕아 표면이 예쁘게 매끈한 것이 특징.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지난해 캐내 쭈글쭈글해진 감자가 대부분인 요즘, 밀양에서 시설재배로 키워 밭에서 갓 캐낸 햇감자는 마치 손으로 껍질을 벗길 수 있을 듯 껍질이 투명하면서도 실한 것이 그대로 한 입 베 물어도 될 듯했다. 하우스 시설 재배는 12월 중순 파종해 4월 중순부터 수확한다.

조직배양으로 씨감자를 대량 생산, 감자 농가에 공급 하는 김 대표는 2010년 이미 신품종 '백산'을 등록, 종자산업법에 따라 20년간 품종보호를 받고 있으며, 민서를 비롯해 8가지 품종을 신품종으로 인정받기 위해 출원 중이다.

◇호기심 많은 열혈 농업인 = 김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농촌에 살려는 생각에 계속 농사를 지었습니다. 산업화로 모두 도시로 떠나고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을을 붙들고 가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농촌에 정착했습니다."

벼농사를 짓다가 서류(고구마·감자류)를 병행했다. 그러다 감자에 집중한 것이 18년 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혁 생명공학연구원장이 '씨감자의 대부'입니다. 그분이 인공 씨감자를 처음 만들 때 그것을 보고 감자에 홀렸습니다."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김 대표는 육종뿐 아니라 한때 컬러감자를 도입해 시험재배하고, 자주색 감자를 항공사 납품업체에 공급할 만큼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강했다.

김용한 대표가 양액재배를 이용해 키우고 있는 씨감자 '민서'.

김 대표는 "농업인들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역발상을 해야지, 틀에 박힌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면 품종 개발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행정기관이나 학자들이 조금만 자극하면 농민들이 깨어날 텐데 아쉽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무렵 미국에서 도입된 수퍼리어, 즉 '수미감자'와 1978년 도입된 데지마, 즉 '대지감자'를 많이 키우고 있다.

"이 품종들은 '더뎅이병'이라는 세균성 병에 많이 감염됩니다. 대지감자는 제주도와 밀양에서 많이 재배되는데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지금 '민서'입니다. 수미 대체 품목은 아직 육종 과정입니다."

감자는 봄 재배와 가을 재배를 한다. 그리고 남쪽 지역에서는 난방시설을 하지 않은 하우스를 이용해 시설 재배를 하기도 한다.

도 농기원 강소농지원단 민간전문가 중 이승래 잡곡분야 담당은 "대지감자는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2기작 재배를 하는 곳에서 사용한다. 즉 따뜻한 남부지역에서 많이 생산한다"며 "감자 종자는 강원도에서 가져 오거나 영세한 일부 공급 업체가 있지만, 김 대표처럼 대규모로 씨감자를 공급하는 민간인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민서는 이미 대지감자를 대체해 서귀포 등 제주도 서쪽 지역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이를 두고 도 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예권해 경영 담당은 "35년 만에 품종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민간 전문가에 의해서"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린씨드의 씨감자 연간 공급량은 20㎏짜리 5만 상자, 약 1000t에 이른다. 1년 매출은 20억 원가량이다.

◇재산 다 날린 미친 농업인 = 씨감자에 홀렸지만 특별히 배울 곳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전문지식이 없던 김 대표에게 있는 것이라곤 그동안의 농사 경험뿐.

본격적으로 육종을 시작한 것은 15년 전이다.

"처음에는 배양실이니 뭐니 하는 시설도 전혀 없었습니다. 원래 우리 집이 동네에서 잘 사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종에 빠지면서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빚을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아니고는 먹고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매달렸습니다."

집안 체면에 도망가지도 못했다.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명예를 회복하고 인정을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김용한 대표가 조직배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감자가 토마토처럼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게 됐습니다. 당장 고랭지연구센터 박사에게 품종을 이렇게 만드느냐, 어떻게 달리게 하느냐고 전화로 물었죠. 꽃가루가 어쩌고 하는데 전화 상으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수박 수정을 하는 방법은 알았어요. 수박처럼 수꽃과 암꽃을 비벼봤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했다. 수박과는 달랐다.

"고민하다 꽃가루를 털고 암술을 교배시키니 되더군요. 스스로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품종 간 교배 등을 통해 '진정종자(기본이 되는 씨앗)'를 만들어 파종해서 관찰합니다. 이젠 잎만 보면 희망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만 개 중에 좋은 것을 육안 선발합니다. 잎 모양, 줄기 상태 등을 살피는데 여기에는 경험이 필요하죠. 이렇게 선별하고 다시 파종하고 또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좋은 품종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2007년 마을 이름을 딴 '백산'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10년가량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지역에서 '이상한 놈'으로 몰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습니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면서 집안 재산 다 날리고 돌아다닌다는 거였죠."

'민서'는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김 대표의 두 아들 이름은 민환(32)과 광환(29).

큰아들 민환의 '민'과 서류(감자나 고구마 등의 작물로서 덩이줄기나 덩이뿌리를 이용하는 작물)의 '서'를 땄다.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딴 광서 1·2·3호도 민서와 같이 출원해 현재 시험 2년 차로, 올해 말 품종 등록을 예상하고 있다. 광서는 2기작인 민서와 달리 1기작 품종이다.

씨감자는 봄·가을 각 10㏊씩 20㏊에서 생산한다.

조직배양을 통해 '바이러스 프리(무병종자)'로 키워진 것을 양액 시설이나 포트 시설에서 씨감자로 키워낸다. 양액재배는 2월에 심어서 4월 말부터 6월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포트 재배는 60일 후 한꺼번에 수확한다. 양액재배는 씨감자가 20~50개 달리지만, 포트 재배는 3~4개 달린다.

◇품종 개발 성공한 자랑스런 농업인 = '민서'는 타 품종에 비해 10일가량 수확이 빠르고 수확량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민서는 어떨까.

"씨눈이 얕아서 껍질을 깊게 벗길 필요가 없어 수월하고 알맹이 손실도 적습니다. 또 타 감자보다 당도도 조금 더 높고 식감이 부드럽습니다. 반찬용으로도 좋고 삶아 먹는 용으로도 두루 좋습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직접 밭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직거래는 하지 않고 전부 서울 가락동 청과시장 등으로 보낸다.

김 대표는 씨감자도 소량 택배 거래하지 않는다. 예권해 경영 담당은 "김 대표는 종자를 주문생산 한다"며 "공급처가 안정돼 판매에 문제가 없고 계획 생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육종에 대한 김 대표의 꿈은 아들들이 이어갈 전망이다. 민환 씨는 김 대표의 일을 돕고 있고 광환 씨는 농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 대표는 "육종하는 사람의 평생소원은 자기 품종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백산'을 인정받았고 민서와 광서 등 8종이 출원 중이라 김 대표의 꿈은 일차적으로는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민서를 보다 확대 보급해 대지감자를 전면 대체하고, 수미감자를 대체할 수 있는 품종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즉 우리나라 식탁의 감자는 모두 밀양산 감자로 바꾸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추천 이유>

◇이승래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잡곡전문가 = 밀양 그린씨드 김용한 대표는 15년째 감자종서 생산에 몸바쳐 오면서 종서생산 전문업체인 그린씨드를 설립했습니다. 종서생산을 위한 시설로 조직배양실 109㎡, 양액재배실 2640㎡, 포트재배실 2310㎡와 저온창고 594㎡, 선별창고 660㎡를 보유하고 종서 5만 상자/20kg를 생산해 667ha에 재배할 수 있는 종서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더뎅이병과 역병에 강하며 기존 품종보다 20% 증수되는 새로운 품종인 '백산1호'와 식용·반찬 겸용으로 대지 품종보다 숙기가 10일정도 빠르고 20% 증수되는 내병·내충성인 '민서' 품종을 개발 보급해 농가 소득증대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뿐 아니라 기술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는 모범적인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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