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경남대 앞에서 재활용품 수거하는 할아버지

경남대학교 앞 유흥가. '댓거리'라고 부르는 이곳의 밤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으로 시끄럽다.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즐거운 밤을 보내는 그곳 한편에서 폐지·재활용품을 수거하는 강만호(가명·71) 씨를 만났다. 강 할아버지는 9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리어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복은 얼룩으로 가득했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강 할아버지는 부지런했다. 쉴 틈이 없다. 인근 가게에서 내놓은 종이박스, 캔, 빈병 등을 리어카에 옮겨 실었고 근방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들도 살펴보느라 분주하다.

강 할아버지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폐지를 찾고 있다.

조금 재밌는 사실은 100m 남짓한 댓거리에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3명이 있었는데, 암묵적으로 각각 구역이 정해져 있단다. 강 할아버지는 "박스 많이 나오는 쪽은 명당이지. 나는 한 달에 10만~20만 원 정도 버는데 많이 나오는 저쪽은 좀 더 벌겠지?"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kg당 폐지는 50~110원, 고철은 200~330원으로 알려져 있다. 시세에 따라 차이가 크다. 10시가 가까워지자 다른 폐지 줍는 사람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다.

댓거리 인근에서 혼자 살고 있는 강 할아버지는 비가 오지 않는 날 보통 밤 9시쯤부터 12시까지 폐지를 줍는데 벌써 3년째다. 3년이란 시간에 지금쯤 어디가면 종이박스를 내놨을지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전문적으로 이 일 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손사래 친다.

강 할아버지는 큰 리어카는 가로등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작은 손수레를 이용해 폐지를 모아서 큰 리어카에 옮겨 싣는다. 거리의 노점상이나 상가들 모두 빨리 가져가라는 듯이 종이박스를 한곳에 모아뒀다. 할아버지가 말없이 들어가서 주섬주섬 폐지를 챙기지만 한마디 말 거는 사람이 없다. 강 할아버지도 먼저 말을 거는 법은 없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선다고 했다. 밤에 나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 나이쯤 되는 친구들은 다들 놀러나 다니고 편하게 살지. 그래서 이 일을 하면서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혹시나 마주치면 창피하지. 사실 이게 쓰레기나 줍고 다니는 건데, 뭐 좋은 거라고…"라며 굳게 입을 다문다.

낮에는 조그마한 규모로 장사를 한다고 했다. 그나마도 요즘은 찾는 발길이 거의 없단다.

할아버지의 리어카. 혹시 누가 끌고가랴 가로등에 자물쇠를 채웠다.

고성에서 태어난 강 할아버지는 1980년대 일을 찾아 마산으로 왔다고 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마산은 기회의 땅인 듯 했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지고 일자리를 잃었다. 50대 중반의 나이, 더 이상 그를 받아주는 일터는 없었다.

"나처럼 이렇게 폐지 줍고 하는 사람들, 다 힘들어. 동사무소는 기초수급 같은 혜택도 이런 저런 이유 갖다 붙여서 안줘. 다 공무원들 자기들하고 줄이라도 조금 있는 사람들이나 주지. 내가 혼자 살고 있는데 밥해먹을 쌀이 없는데도 안줘. 줄게 없대. 그 많은 쌀들이 다 누구한테로 가는 건지 원…."

강 할아버지는 자신의 시각에서 복지행정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현했다. 할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자식들이 회사에 재직 중이라는 이유로 기초수급 자격을 받지 못한다 했다.

그렇다고 큰아들로부터 생활에 도움을 받고 있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불만의 크기만큼 목소리도 커졌다.

"김대중·노무현이 북한에 3조 6000억을 갖다 줬대. 그게 말이가? 차라리 그 돈을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 나눠주지…. 박근혜 정부도 똑같애. 당장 이런 현실을 몰라. 노인연금도 준다 안준다하는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 지역 동장, 아니 반장·통장 같은 사람들이 잘해줘야지. 실태를 바로 보고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허투루 쓰면 안 돼. 나도 옛날에 새마을지도자도 하고 통장도 해보고 해서 아는데,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 가는 게 많거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참…. 정치가 다 거꾸로야 거꾸로."

강 할아버지는 흥분했는지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그만큼 서운한 게 많은 탓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나, 강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그만 따라 온나. 이게 뭐 좋은 거라고 계속 따라오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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