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 결혼 앞둔 딸(박순영)이 쓰는 부모님 결혼 이야기

최근에 환갑을 맞이한 엄마를 위해 우리 형제들은 환갑선물로 뭐가 좋을지 고민하다 가족여행과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해드렸다. 매일 얼굴 볼 땐 몰랐는데 사진 속 부모님은 너무 많이 늙으셔서 새삼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보다가 문득 부모님 결혼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결혼을 앞둔 딸 박순영(27·경상남도미혼모지원센터)이 아버지 박해도(63)·어머니 곽점희(62) 씨의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빠, 사진 속 부모님은 너무 젊으세요. 그런데 사진 찍으실 때 좀 웃으시지. 두 분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신 거예요?

"중매로 만나서 결혼했지. 그때 아빠 나이 25살, 엄마나이 24살이었어. 그 당시 양가 어른들께서 적극 추진해서 좋은 줄도 모르고 결혼식을 했었던 것 같구나. 결혼하기까지 너희 엄마 얼굴 두 번 보고 결혼식장에서 세 번째 본 거였거든. 사진 속 아빠가 피곤해 보이진 않니? 결혼 전날 총각파티 한다고 친구들이랑 술을 양껏 걸치고 한거라 어찌나 몸이 힘들던지…. 내가 봐도 사진 속 모습이 웃음기 하나 없어서 아쉽긴 하더구나. 하지만 엄마·아빠 인물이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니? 하하하."

-얼굴 두 번 보고 평생 동반자로 받아들이다니…. 제 주변을 보면 부모님 시절에도 연애해서 결혼한 예도 꽤 많던데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후회된 적은 없었나요?

"하하하. 솔직히 결혼은 할머니 의견을 적극 따랐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43살에 혼자되셨거든. 그래서 7남매 장남인 아빠 어깨가 아주 무거웠단다. 할머니는 아빠가 빨리 결혼해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지. 그래서 결혼은 할머니 말을 무조건 따르기로 한 거야. 그 당시 할머니는 너희 엄마를 꽤 마음에 들어 하셨거든. 결혼할 당시에는 얼굴 두 번 본 엄마에 대해 좋고 싫은 감정은 없었던 것 같아. 그때 감정을 되돌아보면 '이 여자가 내 동반자구나, 이젠 정말 가장이 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아. 지금은 엄마를 만나게 된 걸 늘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전통혼례로 올렸던 39년 전 결혼사진.

-무뚝뚝하기만한 아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손발이 오글오글 해요! 결혼사진을 보니 전통혼례로 했네요?

"전통혼례도 어르신들 의견이었단다. 나이가 들면서는 젊었을 때 턱시도 한번 못 입어 본 게 아쉬운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자식들이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해줘 정말 고맙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이 나이에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게 될 줄은 몰랐거든. 자식들이 다들 잘 커서 효도 받는 이 기분,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어.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하면 자식 한 명 낳고 말던데, 그런 걸 보면 안타깝다니까. 분명 자식들을 키우면서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얼마나 행복한 일도 많은데. 자식 네 명을 둔 아빠처럼 말이야. 그니까 우리 딸도 자식 세 명은 꼭 낳아."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 세 명은 정말 무리라고요. 올해가 부모님 결혼하신 지 몇 년째죠?

"올해로 만 38년이란다. 시간이 어쩌면 이렇게 잘 흘러가는지. 그동안 너희 엄마와 살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자식들 낳아서 키울 때 행복함도 느꼈고, 여러 가지 문제로 싸움도 많이 했었지. 내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거 같아. 자식이 많아서 남들보다 배로 벌어야 했지. 아직도 두 명이나 더 출가해야 하니까 더 열심히 벌어야지. 남은 자식이 출가할 때까지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야. 그때까지 아빠 몸이 따라줄지는 몰라도…."

-앞으로 결혼생활은 어떻게 해나가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이제 자식들도 다 컸으니 아빠·엄마 생활을 좀 찾고 싶어. 그동안 못해봤던 문화생활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어. 그리고 오래오래 살아야 하니까 규칙적으로 등산도 다니고 싶단다. 앞으로는 자식보다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고, 엄마가 아빠를 보면 웃을 수 있는 일들만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노력해야지. 요즘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니? 하하하."

-확실히 나이가 드니까 남자는 여성화, 여자는 남성화되는 것 같아요. 최근 아빠의 여성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올해 셋째 딸이 결혼하는데, 아빠 기분이 궁금해요.

"올해 우리 딸이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처음에는 막연히 서운하기만 하더구나. 벌써 아빠 품을 떠나고 싶은 건지, 혹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건지라는…. 막내딸이라 그런지 나이는 27살인데, 아빠가 느끼는 체감은 아직 어린애 같거든. 지금은 서운한 감정도 있는 반면에 벌써 이만큼 커서 먼저 시집간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아. 큰언니·작은언니를 시집보낸 경험이 두 번 있어서 그런지, 우리 셋째 딸 시집준비는 솔직히 불안하거나 떨리지 않아. 11년 전 처음으로 결혼 준비할 때는 많이 불안하고 초조해했었어. 그래서 엄마·아빠 몸무게가 쏙 빠지기도 했어. 셋째 딸은 결혼생활도 잘 해낼 거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은 없어. 의젓한 사위 맞이할 생각 하며 기쁜 마음으로 결혼시키고 싶단다."

지난해 아내의 환갑을 맞아 촬영한 리마인드 웨딩사진.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오늘 막내딸과 이야기하면서 지난 삶을 많이 되돌아본 것 같구나. 지금 부자는 아니지만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현재 삶에 만족해 가며 살아가고 있단다. 내 자녀들이 잘 커줬고, 손자도 두 명이나 있고, 엄마도 내 옆에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이니? 남은 삶을 이젠 자식보다 엄마와 함께 오순도순 보내고 싶구나. 그리고 우리 자식들 간에 우애있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마음의 부자가 되어 많이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경상도 출신의 무뚝뚝한 아빠와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려니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아빠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결혼을 앞둔 나로서는 부모님 결혼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이 많이 와 닿았고, 나도 앞으로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부모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많이 늙으신 부모님을 보며 속상한 마음도 컸는데, 그 만큼 살아계실 때 효도도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는 시간이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마음 되새기며 부모님께 더 잘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박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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