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64) 박쥐

◇통영 황금박쥐 = 통영 어느 마을에서 황금박쥐가 개발 위기에 빠진 마을을 구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박쥐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궁금해진다. 장롱과 각종 생활 용품에 박쥐가 새겨진 것도 많고 40~50대 아저씨들은 어릴 적에 '황금박쥐'가 정의의 사도였다. 동양에 황금박쥐가 있다면 서양엔 '배트맨'이 있다. 하지만 박쥐가 늘 좋은 것만 아니다. 박쥐를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서양 마녀 부하나 나쁜 캐릭터로 박쥐가 많이 나오고 드라큘라와 뱀파이어와 같기 때문이다.

◇장롱과 경대에 새겨진 박쥐 = 어릴 적 할머니 장롱에 쇠로 된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 생긴 것이 꼭 박쥐를 닮았다. 왜 장롱에 박쥐를 붙였을까? 하고 궁금했다. 알고 보면 참 단순하다. 박쥐는 중국말로 편복()인데 중국 발음이 福의[fu]이다. 행복 福 [xingfu] 할 때 복 복 福[fu]자와 발음이 똑같다. 그래서 박쥐는 복을 주는 동물이 되었다. 부자 부 富[fu] 와 중국 발음이 같아서 중국에서는 부자 되라고 박쥐 그림을 붙이기도 하고 박쥐 다섯 마리를 그려서 오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중국 <상서(尙書)> '홍범편(洪範篇)'에 보면 오복(五福)이란 오래 살고(壽), 부자 되고(富), 건강(康寧)하고, 덕이 있고(攸好德), 좋게 잘 죽는다(考終命)를 뜻한다.

발음이 같다는 까닭을 알고 나면 참 간단하다. 그래도 더 이유가 궁금하면 대학 입시 시험 보기 전날 잘 붙으라고 엿과 떡을 선물하고, 잘 풀라고 휴지를 주고, 잘 찍으라고 포크나 도끼를 선물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할머니 장롱에 손잡이가 박쥐인 것은 잡을 때마다 복이 온다는 뜻도 있지만 밤에 생활하는 야행성 박쥐가 밤눈이 밝아서 가구 안의 소중한 물건을 잘 지켜줄 것이란 뜻도 있다. 요즘 보안업체의 역할까지 박쥐가 했다.

여자의 생활 용품에는 뜻이 하나 더 붙는다. 바로 다산이다. 밤하늘 박쥐의 군무를 본 사람이라면 박쥐가 다산을 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옛날부터 그릇, 장식, 가구, 옷, 베개에 박쥐를 그린 것은 박쥐는 복이 있고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는 박쥐 그림이 된다.

드라마 <전우치>의 한 장면. '도사' 전우치의 어깨에 박쥐 모양 장식이 있다.

전우치와 신선에게 박쥐는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 <전우치>를 보다가 배우 차태현의 어깨에 박쥐가 있는 걸 보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드라마 의상 담당하는 사람이 전우치 어깨에 하필이면 많고 많은 동물 중에서 박쥐 모양 장식을 붙였을까? 도사님 어깨에 박쥐를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1776년 김홍도가 그린 국보 제 139호 군선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신선도에 그려진 박쥐가 도사 전우치 어깨에 내려앉은 것이다. 박쥐가 천 년을 살면 흰 박쥐가 되고 박쥐를 잡아먹으면 신선이 된단다. 박쥐는 동굴의 종유석을 먹고 살아서 오래 사는데 하늘나라 박쥐(天鼠)와 신선의 박쥐(仙鼠)가 된다. 신선들과 함께 오래 오래 사는 박쥐는 장수와 도교의 신선을 상징하는 동물이 된다.

◇박쥐 어원과 이중성 = 박쥐는 밤눈이 밝다고 밝쥐라는 유래와 야행성이라 밤눈이 밝은 밤쥐라는 유래 두 가지가 있다.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박쥐가 늘 좋은 동물로만 생각된 것은 아니다. 1678년 숙종 4년에 홍만종이 쓴 <순오지(旬五志)>라는 책을 보면 박쥐의 이중성이 잘 나온다. 날짐슴 새들이 다 모이는 봉황의 잔치에 박쥐는 길짐승이라 하여 가지 않았다. 들짐승 기린의 잔치에는 박쥐는 날짐승이라 하고 가지 않았다. 박쥐는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에게 미움을 받아 밤에만 밖에 나오게 되었다고 <순오지>에 전한다. 박쥐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우화는 <이솝 우화>에도 있다.

박쥐는 날아 다니는 날짐승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포유류인가? 새와 쥐의 중간 동물인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이고 간사한 동물인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어느 쪽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동물이다. 사는 곳은 컴컴한 동굴이고 밤에만 움직이다 보니 더 그렇게 포장된다.

김홍도의 군선도.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신선'인데 박쥐가 눈에 띈다. /호암미술관

◇드라큘라와 뱀파이어 그리고 흡혈박쥐 = 서양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드라큘라는 흡혈박쥐가 된다. 만화영화에서 마녀는 꼭 박쥐가 떼로 날아다니는 음침한 성에 산다. 박찬욱 감독 영화 <박쥐>도 서양 박쥐와 뱀파이어의 영향을 받아 동양 박쥐 이미지보다는 서양 뱀파이어 박쥐를 닮았다. 동양의 복을 주는 긍정적 박쥐와 서양의 부정적 박쥐 사이에 동서양이 닮은 박쥐가 하나 있다. 일본 만화 <황금박쥐>와 서양 만화 <배트맨>이다. 황금박쥐와 배트맨은 동서양 박쥐가 현대에서 만나 정의의 사도가 되어 악의 세력을 물리친다.

서양의 그림 속 흡혈박쥐.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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