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많은 이야기 너무 평면적으로 배치…장면 간 연결성 끌어올리기가 관건

"고군분투했으나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재한 감독 신작 <에프 투 원>(가제) 가편집본 시사회를 본 사람들이 보인 대체적인 반응이다.

도내에서 처음으로 '억대' 제작비가 들어간 장편 독립영화 <에프 투 원>이 가편집본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창원 한서병원 뒤 나비소극장에서였다. 김재한 감독이 최종 편집 전 영화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자 지역 문화계와 정치계, 언론계 사람들을 초청해 마련한 자리다.

지난 10일 창원 나비소극장에서 열린 영화 <에프 투 원>(가제) 가편집본 시사회에 모인 관객들이 김재한 감독과 함께 영화 전반에 대한 느낌과 소회, 앞으로 개선점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김두천 기자

작품에 대한 자존심 강하기로 이름난 영화감독 세계에서 감독 스스로 자신이 찍은 영화의 가편집본을 공개하고, 다수 대중에게 편집 방향을 묻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는 <에프 투 원>이 경남은행, 경남사회적기업지원센터 같은 공공단체는 물론, 지역 시민사회와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준 후원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반영하듯 시사회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영화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이 20명 넘게 모여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영화는 가편집본임을 떠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에서 완성도가 극히 떨어져 보였다.

김재한 감독이 가편집본 시사회에 앞서 영화 제작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김두천 기자

영화는 제작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결혼 이주여성들이 놓인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베트남 이주여성인 투이는 교통사고로 인한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여러 정황과 주변인 증언을 바탕으로 경찰 등 관계 기관에 재수사를 하소연한다. 한데 단순 교통사로 결론을 내린 경찰은 꼼짝하지 않고 오히려 투이에게 협박을 가한다. 고민 끝에 투이는 직접 남편 죽음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남편 주변인을 찾아다니고, 스스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플롯이다.

투이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이주 여성에 대한 우리 안의 시각을 돌아보자는 의도다. 김재한 감독 역시 "경남이주민센터에서 본 사례를 바탕으로 결혼 이주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모습을 드러낸 영화는 본질보다는 곁가지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을 진해 수도에서 촬영한 영화는 저 멀리 외지에서 차 한대가 들어오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도가 암시하는 배경은 이전에는 섬이었지만, 지금은 매립과 간척으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드나듦이 자유로워진 공간이다. 뭍 그리고 뭍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는 연결됐지만 심정적으로는 단절된 공간이다. 이들 사이에서도 완벽한 이방인인 투이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김재한 감독은 이 속에 몇 가지 스토리 라인을 심었다. 투이가 가진 남편 죽음에 대한 의문, 전통세력과 투기개발세력 간 보이지 않는 대립, 이들 세력 간에 가해자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마을을 만드려는 불합리한 공권력 행태, 투이 친구를 통해 드러내려 한 결혼 이주여성의 현실 등이다.

영화는 이렇게 수많은 스토리 라인 중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심도 있게 끄집어내지 못했다. 이야기를 너무도 평면적으로 늘어놓아 감독이 영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영화 초반 이런저런 설명이 너무 길어, 정작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시작 후 50분 뒤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이 많았다.

하나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등 장면 간 연결성도 부족해 몰입이 방해받기 일쑤였다.

더욱이 주연급 배우 부족으로 이미 역할이 정해진 배우를 다른 역할로 돌려막은 것은 물론, 투이 남편 역을 맡은 배우가 섭외되지 않자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또한 영화의 완결성을 해치는 데 한몫했다.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파헤치는 투이가 영화 내내 너무도 깔끔한 옷차림으로 연신 잘 정돈된 앞머리를 매만지는 비현실적인 분장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혔다.

올해 초 마무리된 <에프 투 원> 촬영 현장 모습. /메이드 인 필름

이들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후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도 이어졌다.

김갑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는 "영화가 어느 장르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도 불분명한데다, 장면 간 연결성이 부족해 긴장감이 없어 아쉽다"며 "주연배우는 물론, 모든 배우들의 대사나 동작이 느려 경남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잘 반영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내용에 대해서도 "전통적으로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과 투기개발세력 간 대결이 주된 그림이 돼야 하는게 상식인데, 영화는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과 마을의 안녕을 지키려는 공권력 간 대결을 더욱 비중있게 그려 이야기를 모호하게 전개한다"면서 "이런 대립 구도가 잡히지 않으니 캐릭터들이 연기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박재현 경남영화협회 사무국장도 "영화가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이들 궁금증에 대한 해소는커녕 단서조차 마련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면서 "차라리 이 영화는 아예 불친절하다는 전제를 깔고 편집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희 전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은 "영상은 훌륭하나 구도가 너무 옛날 방식이라 아쉽다"고 평했다.

김재한 감독은 이들 의견에 대해 "지역에서 영화를 하다보니 전문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장비·인력 모두 대부분 서울이나 외지에서 도움을 받다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 심도 있는 장면을 찍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면서 "여러분이 주신 조언을 참고해 더 나은 편집으로 완성도 있는 영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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