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문화·사람·세월이 빚은 음식, 그 속엔 우리네 삶이

어느 지역 대표 먹을거리가 만들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들 기질·문화·지리적 특성·산업·교통구조 같은 것과 어우러져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진 것입니다. 때로는 어느 누군가의 남다른 정성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행정이 적극 나서 힘을 보태는 때도 있습니다. 이 속에서 어느 지역은 대표 먹을거리가 넘쳐납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통영은 경남에서 가장 화려한 맛을 자랑하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출발점은 300년간 이어진 '통제영'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한양 고급문화가 풍부한 수산자원과 만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부산·경남 수산업 가운데 절반이 이 지역 몫이었습니다. 그때 이 고장을 풍성하게 일군 것은 결국 뱃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에 놓은 음식문화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무김밥·다찌·시래깃국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풍성한 삶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빼떼기죽은 양식 부족한 이들을 달래는 끼니였습니다.

   

우짜는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 이들을 충족한 지혜로운 음식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우짜 전문 식당이 들어섰지만, 얼마 못 가 문 닫은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통영 사람들은 "우짜는 세 번 먹어야 그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통영에서 나는 멍게는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통영에 워낙 특화된 음식이 많다 보니 멍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작은 듯합니다.

진주도 빠지지 않습니다. 통일신라시대 685년에 오늘날 도청 소재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중앙에서 관리가 모여들면서 음식도 화려해졌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것이 냉면·비빔밥·헛제삿밥·교방음식입니다. 지금까지 훌륭한 토속음식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빔밥은 '기생들 손에서 나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제사음식에서 발전' '진주성 전투 때 사용한 음식' 같은 여러 유래가 붙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장과 달리 양산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이곳 사람들 스스로 특색 있는 뭔가를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합니다. 양산은 정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동북쪽인 웅상지역은 부산·울산 생활권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다 1970년대에는 부산 팽창 흡수 역할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머니 사정 괜찮은 이들은 굳이 자기 지역에서 뭔가를 찾으려 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도 한때는 민물고기 음식을 즐겼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웅어회입니다. 이마저도 1987년 낙동강 하굿둑 영향으로 잃게 되었습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원동면 남쪽은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정비사업으로 딸기·수박·감자 농가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음식 이름 앞에 그 지역명이 따라붙는 것이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 한 고장에 한 개만 있어도 으쓱할 만합니다. 그런데 의령 같은 곳은 두 개나 내놓습니다. '의령소바' '의령망개떡'입니다. 바깥에서 들어왔지만 안방마님으로 자리한 것들입니다. 소바는 일본식 메밀면 요리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일본서 맛보고 와서는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 맛을 본 이들이 부추겨 애초 계획에 없던 장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의령망개떡'은 몇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시와모치'라는 일본음식이 일제강점기 때 흘러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옛 시절 다른 지역에서도 '망~개~떠억~' 외치는 행상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의령에 토착화되었습니다. 60여 년 전 어느 할머니 손맛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밀양돼지국밥' 유래는 이 지역을 관통하는 '영남대로'에서 찾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가는 길손들 허기 달래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입니다. 주로 찾는 이들이 뜨내기다 보니 입소문도 좀 더 수월하게 난 듯합니다.

'하동재첩'은 섬진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동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광양도 섬진강을 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광양 재첩'은 입에 달라붙지 않습니다. 옛 시절 광양 쪽에서 잡은 것도 하동에서 내다 팔았기 때문입니다.

김해에는 도축장이 두 개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영갈비' '김해뒷고기' 같은 것들이 나온 배경이기도 합니다. '함양 안의갈비탕' '합천 삼가한우' 역시 아주 큰 우시장 덕이었다고 합니다.

   

'거창사과'는 이 지역 경제 구조를 바꿔놓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낮은 지대인 거창읍·남상면·가조면이 주 재배지였습니다. 온난화 때문에 지금은 이 지역 최북단인 고제면까지 뻗쳤습니다. 고제면 사람들은 품팔러 읍내 나가던 신세를 면하고, 오히려 그들 일손을 빌린다고 합니다.

시배지로서 그 명성을 계속 잇는 것도 많습니다. '창녕양파' '김해 진영단감' '밀양 삼랑진딸기' '하동녹차' '하동 악양대봉감' 같은 것입니다.

'죽방렴멸치' 하면 그 앞에 남해가 곧바로 달라붙기도 합니다.

'충무'라는 지명은 사라졌지만 '충무김밥'은 그 이름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마산아귀찜' '삼천포쥐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통영김밥' '창원아귀찜' '사천쥐포'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거창·함양·산청은 지리적 여건이 비슷해 대표 음식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곳 모두 '어탕국수'를 내놓습니다. 함양·거창은 갈비(탕)에서 묘한 신경전을 펼칩니다. 거창 사람들은 "함양 안의갈비요? 우리는 원동갈비가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러면 함양 사람들은 "옛 시절 거창부군수가 문턱 닳도록 찾다 보니 안의갈비탕 입소문이 퍼졌습니다"라고 받아칩니다. 하지만 함께 공감하는 것도 있습니다. 거창·함양·산청은 바다와 거리 먼 곳입니다. 길이 여기저기 뚫리기 전에는 생선 구경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합니다. 어쩌다 맛볼 때 큼큼한 냄새가 나 원래 그러려니 하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썩은 생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사람들은 '썩은 생선 신세 면했다'는 말을 가끔 떠올리기도 합니다.

통영·진주·진해는 이름난 빵을 내놓고 있습니다. '통영꿀빵' '진주찐빵' '진해벚꽃빵'입니다. '통영꿀빵'은 1960년대 달콤한 간식거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강구안 주변은 이를 전문적으로 내놓는 가게가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진주찐방'은 70년 된 어느 작은 가게 작품입니다. 찐빵에 단팥죽을 섞어 먹는 별식입니다. '진해벚꽃빵'은 한 제과점에서 벚꽃 진액을 팥소에 넣어 내놓은 것입니다. 5년이 채 안 됐지만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세 가지 빵을 모두 맛보고서 평가하는 재미를 두기도 합니다.

   

'마산통술' '통영다찌' '진주실비'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안주를 자랑합니다. 그래도 저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마산통술'은 한 상 화려하게 내놓는 요정문화가 서민적으로 변형됐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번성했다고 합니다. '통영다찌' '진주실비'는 그 이후 유사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셈하는 방식입니다. '마산통술'은 한 상 5만 원에 소주 5000원·맥주 4000원, '통영다찌'는 한 상 10만 원에 술 10병 포함, '진주실비'는 술값으로만 소주 1만 원·맥주 5000원 하는 식입니다. 술·안주 가운데 어디에 더 비중 두느냐에 따라 장·단점이 있습니다.

진해만은 대구가 유명합니다. 이를 함께 끼고 있는 거제 외포항·진해 용원은 집산지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마구잡이 어획으로 1950년대부터는 그 양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1980년대 인공수정란 방류를 통해 다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두 지역 모두 지난 기억을 잊지 않아 다 자라지 않은 것들은 그물에서 떼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소고기국밥은 의령·함안에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단감은 김해 진영·창원 북면, 수박은 의령·함안 대산·창원 대산, 곶감은 산청·함안 파수가 자랑하고 있습니다. 양산·합천은 산채비빔밥·약선요리에서 정성 들인 밥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삼보사찰이 있는 곳답게 말입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는 지나온 세월을 담고 있습니다. 그 세월 속에는 그것을 일구기 위한 사람이 있습니다. '먹을거리에 담긴 문화' 역시 결국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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