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재발견]발길 닿는 곳마다 경남은…시시각각 변하는 제 모습

경남에서 가장 넓은 땅을 품은 곳은 합천입니다. 면적이 983.47㎢로 경남에서 가장 넓고 서울보다 1.6배 큽니다. 하지만 전체 면적 가운데 72%가 산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쓸모 있는 땅은 많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면적이 가장 좁은 곳은 통영입니다. 239.17㎢로 섬이 526개나 됩니다. 하지만 땅 넓이와 그 지역 자산은 절대 비례하지 않습니다.

너무 큰 것을 안아 숨겨진 고장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한 절이 '삼보사찰'입니다. 양산 통도사·합천 해인사·순천 송광사가 그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경남에 두 곳이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소중히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양면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양산 사람들은 통도사를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양산 통도사.

"통도사 없었으면 너무 심심한 곳이었을 겁니다. 반대로 통도사가 있었기에 그 외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합천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오갑니다.

"합천보다 해인사 지명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이 두 지역 사람들은 '통도사 아닌 양산, 해인사 아닌 합천'에 대해서도 눈길 주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칩니다.

김해는 풍성한 가야문화를 자랑합니다. 시내에 자리한 수로왕릉을 중심으로 반경 1~2㎞ 안에 가야 유적지가 집중해 있습니다. 행정에서도 가야문화에 정성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다른 자산은 없는지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한 인물이 뿌린 여러 흔적

'경남의 재발견'이 발걸음 한 20개 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흔적을 두고 있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입니다. 전국적으로도 이순신을 기리는 사당이 30곳 넘습니다. 그 안에서 이순신과 좀 더 각별함을 내세우는 곳이 통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 식상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되죠."

그러면서 400여 년 전 '삼도수군통제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통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통제영'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통영 통제영 세병관.

남해도 빠지지 않습니다. 노량해협에서 숨을 거둔 이순신 장군 시신은 관음포로 옮겨졌습니다. '이순신이 떨어진 곳에 세운 사당'이라는 '이락사'가 지금 자리한 곳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 후 임시로 묻힌 곳은 남해 설천면 노량리 언덕입니다. 지금 '충렬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것으로 부족한지 이순신 순국공원이 대대적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고성에서는 왜선 57척을 격파한 당항포해전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리는 '이충무공 사당·전승기념관'이 당항포관광지에 있습니다. 거제에는 '임진왜란 첫 승전지' 의미가 담긴 옥포대첩기념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해에는 1952년 전국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기도 합니다. 사천에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겼던 곳'이라는 대방진굴항이 사람 발길을 끕니다.

최치원 선생도 곳곳에 이야기를 흘려 놓았습니다. 태수로 있던 시절 범람을 막기 위해 인공숲을 조성한 것이 '함양 상림'입니다. 강물에 비친 산 모습이 거울같이 아름답다며 시를 읊은 곳이 '양산 임경대'입니다. 남해안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이라며 이름 붙인 곳이 '사천 남일대(해수욕장)'입니다. 또한 제자를 가르친 곳은 '마산 월영대'이며, 돼지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곳이 '마산 돝섬'입니다.

하동에 하나뿐인 국보인 '진감선사대공탑비'는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를 흠모하며 세운 비입니다. 그 비문을 쓴 이가 최치원 선생입니다.

하동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

남명 조식 선생은 합천에서 태어나 산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합천 삼가면 외토리에는 생가지,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뇌룡정, 선생 덕을 기리고 위패를 모신 용암서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산청에도 유적지가 있는데 수많은 제자를 가르친 '산천재'가 대표적입니다. 선생은 18년 동안 김해에 머물며 '산해정'에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삶을 바꿔놓은 '길'

그 지역 삶에 특히 영향을 끼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길'입니다. 산간지역이나 섬 같은 곳은 더욱 그렇습니다.

거창·함양은 1984년 88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두메산골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산청 역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바깥사람들이 찾으려면 진주를 거쳐 국도로 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 통영대전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제 산청은 관광객 받아들이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함양 상림.

옛 시절 남해 창선면은 섬 중의 섬이었습니다. 1980년 창선교가 놓이면서 그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창선·삼천포대교까지 놓이면서 더 이상 섬 아닌 섬이 됐습니다. 생활권도 사천 쪽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사천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육지길·바닷길·하늘길 '3길'이 열려있습니다. 2006년 이 지역 동·서를 연결하는 사천대교가 놓였습니다. 이전까지 동쪽인 사천읍·옛 삼천포는 사람 발길이 잦았습니다. 서쪽인 서포면·곤양면·곤명면은 상대적으로 덜해 박탈감 같은 게 자리하기도 했습니다. 사천대교가 놓이면서 조금은 균형을 이뤄가는 지금입니다. 반면 사천에서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가 진주까지만 연결됐을 때는 사천으로 발걸음 하는 위쪽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완전 개통 이후에는 관광객이 모두 통영으로 흡수됐기 때문입니다.

사천항공우주엑스포 행사 모습.

남해 창선·삼천포대교.

못내 아쉽게 다가오는 것들

산청은 맑은 물과 지리산에서 나는 여러 약초 덕에 한방고장으로 이름 알리고 있습니다. 이보다는 TV드라마가 큰 몫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실존인물 유이태는 뒤에 있고, 허구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류의태만 크게 드러나 있습니다.

창녕 영산호국공원은 과한 덧칠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의병활동에 참여한 전제 장군 관련 비가 있습니다. 전제 장군은 전두환 전 대통령 14대조입니다. '고증 부족과 왜곡'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내 곳곳에는 특정 예술인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친일논란 인사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념관에는 그러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평가는 보는 이들 몫으로 돌려도 될 텐데 말입니다.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창원 이원수 문학관, 밀양 박시춘 생가에는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세 명이 경남 땅에서 났습니다. 합천 전두환·거제 김영삼·김해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분위기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합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새천년생명의 숲 공원'이라 부르는 분위기입니다. 합천 사람들은 재임 기간 고향에 해준 게 없다는 섭섭함도 내비칩니다.

옛것에서 새것을, 새것에서 옛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진주 영남포정사'와 '창원 새영남포정사'입니다. 진주성에 자리한 영남포정사는 1925년 도청 이전 전까지 경남의 관문이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창원 용지문화공원에 있는 새영남포정사는 1983년 이후 이곳이 도정 중심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은빛모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진주 사람들은 남강백사장, 합천 사람들은 황강백사장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놀이터이자, 멱 감던 곳이자, 소싸움장이었던 옛 기억과 함께 말입니다. 지금은 지형변화로 은빛모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산·진해는 수많은 바다가 육지로 변한 대표적인 곳입니다.

자연 스스로에 의해, 혹은 인간이 손을 대 눈앞의 것들이 계속 변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남의 재발견'이 담은 오늘날 이 내용이 훗날 더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