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괭이밥

온 세상이 '발걸음 걸음마다 놓인 저 꽃'들의 세상입니다. 산꼭대기에서 피어 내려오는 진달래의 분홍빛 웃음은 등성이 떨기나무들 모닥모닥 연둣빛 새 순을 어루만지며 산 아래께 벚나무 숲을 향해 퍼져오고 세상은 온통 꽃들의 잔치로 부산합니다. 메마른 도시의 아스팔트 틈새 하나에도 엉기는 푸른빛, 눈길 두는 곳마다 꽃 피지 않는 것들이 없습니다. 발걸음마다 새순들이 밟히고 작고 작은 꽃들의 눈에 어려옵니다. 시장어귀, 마을버스 정류소, 가로수 아래께를 걷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꽃들의 안부를 살핍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덩달아 거기 뭐가 있나 하여 내려다봅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담으며 발길에 닳아 뭉그러진 개미자리 꽃송이를 곧추세우고 냉이꽃 꽃대를 돌 틈 옆으로 비켜 놓습니다. 앞만 보는 성급한 사람들의 발길에 무사하라고 주문 외듯 얘기를 나눕니다.

아직 꽃피기 이른 철인데도 양지쪽에서 꽃을 피운 연하디 연한 괭이밥 잎은 이미 흔적도 없이 줄기만 남았습니다. 잎도 없이 샛노란 웃음을 날리는 꽃송이 앞에서 섧고 서러웠던 겨울의 마음을 '힐링' 받습니다.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라는데 나는 무엇으로부터 상처 받았으며 어디 가서 치유 받아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의 겨울을 심하게 앓고 난 이후라 괭이밥 작은 풀꽃 한 송이에서 '이것이 바로 힐링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진정한 힐링은 반물질 친생태적으로 살아가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던 지인의 충고가 떠오릅니다.

문득 시들었던 삶의 의지가 솟습니다. 괭이밥 작은 꽃 한 송이의 위로가 이 봄을 환하게 합니다. 보도블록 틈새나 아스팔트 균열 사이에서도 먼지만 뭉쳐 있어도 피어나는 들꽃 '괭이밥과'의 괭이밥. 그 맛이 시어서 생잎을 뜯어먹으면 새콤한 맛이 난다 하여 '시금초'라 불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들꽃입니다. 아파서 시름하던 고양이가 이 풀을 뜯어먹고 낫는 것을 보고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데요.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막 자라는 이 작고 작은 풀이 한방에서는 '초장초(酢漿草)'라하여 청열이습·양혈산어·소종해독의 효능이 있으며, 설사 이질·황달·토형·인후종통·탈항·치질·옴을 치료하는데 쓰는 영약입니다. 줄기와 잎에 다량의 숙신산염이 함유되어 있고, 시트르산·타르타르산·말산이 함유되어 있어 신맛을 낸답니다. 이 재주 많은 괭이밥을 7~8월에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서 물700ml에 10g의 전초를 넣고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마시면 효험을 볼 수 있으며, 옴이나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에는 삶은 물이나 생즙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그런가하면 오염이 없는 깨끗한 곳에서 자라는 싱싱한 전초는 뜯어서 야채샐러드를 해 먹으면 새콤하고 맛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4명 중 한 명이 아토피를 앓고 있다는 이 문명병의 시대에 사방천지에서 힘차게 잘 자라는 이 괭이밥은 참 위대한 식물자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작고 작은 이 들풀 한 송이에서 고단한 생의 위안과 건강한 삶을 선물 받는 행복한 봄날입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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