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우포늪의 생명들

연초록빛 버드나무들의 아름다움과 짙은 향이 우포늪의 아침을 연다. 벌써 따오기도 일곱 개의 알을 낳았다. 사지포 뒤편에서는 노랑부리저어새와 백로류, 큰기러기들이 어제 오늘 내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비가 온 뒤 늪의 물높이가 높고, 배가 자주 뜨면서 안전한 먹이터인 이곳을 북상하기 전 마지막 먹이터로 사용하는 것 같다. 벌써 잉어들은 산란 준비를 하는지 물 속에서 내내 '쯔쯔' 소리를 내며 수초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한 쌍의 너구리는 한 낮에도 늪가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고 힘이 부치는 듯 물억새 숲 안에서 햇볕 쪼기를 하며 졸고 있다.

봄은 누구에게나 나른한 계절이다. 독수리도 파수꾼이 바뀐 것으로 보아 가까이에서 활동하던 녀석들은 이제 북상을 다한 것 같다. 쌍안경으로 여러 번 정든 녀석들을 찾았지만 낯선 녀석들이 우포 하늘을 돌아다닌다. 이제 고성에 남은 120마리의 독수리들만 4월까지 머물 듯하다. 지역에서 먹이를 나누었던 고성과 김해, 우포 등에서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동안 먹이나누기 활동에 참여한 어린이와 가족과 울산생활협동조합, 지역 식육점 등 많은 분들의 관심에 감사드리며, 봄을 맞아 우포자연학교와 작은 도서관 만들기 활동에 더 전념할 때인 것 같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들은 2020년이면 "심장 및 혈액순환 장애와 더불어 우울증 환자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질환으로 부상할 수 있다"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자연으로부터 소외'를 꼽았다고 한다. 즉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지 못해 영혼이 피폐해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접하고 나는 많이 공감을 하는 편이다.

23년 전 우포늪 보전운동을 하러 이곳에 들러 원시 자연늪을 보면서 처음 느꼈던 경외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봄철 새순이 돋아날 때 평소 덤불 속으로만 이동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같은 작은 새들이 버드나무 위에서 새싹을 뜯어먹으며 혹독한 겨울 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는 지혜를 보며 사람과 새들의 모습은 하나였던 것이다. 이후 자연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생에 공감하면서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 가리라 다짐한 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가 된 셈이다.

오후에는 우포늪 안이 분주하다. 새학기가 되어 우포생태교육원의 체험학습에 참가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현장에서 체험학습을 하는 날이다. 2008년, 람사르총회의 성과물로 도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생태체험 교육이 제공되는, 경남교육의 자랑거리다. 아이들에게는 귀중한 습지생태체험학습인 셈이다.

   

20년 전에 시작한 우포늪 보전운동이 만들어낸 여러 성과 중에 환경교육의 제도화란 측면에서 국내의 유일한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봄을 다시 세우는 학습을 멀리서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물빛 고운 우포늪의 오후가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공간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인식(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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