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거창 극단 입체 〈유라시아 열차〉·창원 극단 미소 〈꽃신〉 공연 살펴보니

제31회 경상남도연극제(이하 경남연극제)가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시작해 오는 10일까지 매일 한 작품씩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30일 무대에 올랐던 거제 극단 예도의 <사랑은 룸바를 타고>에 이어 4일 거창 극단 입체의 <유라시아 열차>, 5일 창원 극단 미소의 <꽃신>에 대한 리뷰를 적어본다.

무대 연출은 크고 화려했다. 연극 제목대로 무대 위엔 유라시아 열차를 세웠고, 실제 총 쏘는 소리와 증기를 내뿜는 소리 등은 극의 사실감을 더했다. 이종일 연출가 특유의 꽃가루를 뿌리는 신은 여전했다.

〈유라시아 열차〉(작 박정영·연출 이종일)는 연해주에 모여 살다가 1900년대 초반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옛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 즉 '카레이스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31회 경상남도연극제에 참여한 13개 극단의 작품 중 가장 역사성을 띤 작품으로 카레이스키의 애환을 몇 사람에 빗대어 그렸다.

<유라시아 열차> 공연 모습.

어머니가 죽으면서 아들 이반에게 "나의 마음은 돼지 속에 있을 테니…"라며 돼지를 잘 살필 것을 주문한다. 또래 아이보다 지능이 낮은 이반은 돼지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다룬다. 그래서 이반은 러시아 아이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연극은 이반과 김씨할배, 연이, 갑이, 고씨, 고씨 부인 등이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 즉 유라시아 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에 발을 내딛기까지를 담는다. 극 대부분은 유라시아 열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종착지도 어디인지 모르고 열차를 탄 카레이스키. 먹을 것도 없고 춥고…. 극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일제에 짓밟히고 옛 소련의 억압을 받은 것도 서글픈데, 카레이스키들은 서로 살겠다고 발버둥친다.

이야기는 탄탄했다. 문제는 배우의 과도한 액션과 과장연기, 과도한 연출 욕심이었다. 상대가 그냥 '툭'하고 쳤을 뿐인데 과도하게 반응한다든가, 군무가 딱딱 맞아야 하는데 엉성하다든가…. 배우들 간의 호흡이 미흡했다.

함양문화예술회관은 각 극단에 '불'을 붙이는 등의 위험한 신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단 입체는 그것을 미리 알지 못했는지 극에 불붙이는 장면을 삽입해, 극이 끝날 때까지 관객은 탄 냄새를 맡아야 했다.

경상남도연극제가 경연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약간의 경쟁이나 신경전은 있을 수 있지만 관객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은 되새겨야 한다.

연극은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예술이다. 평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도 관객이 따분해하면 좋은 연극이 될 수 없다. 배우가 울면 관객도 울고, 배우가 웃으면 관객도 웃는. 배우와 관객의 찰떡궁합 호흡을 자랑하는 연극을 오랜만에 봤다. 바로 창원 극단 미소의 〈꽃신〉(작·연출 장종도)이다.

<꽃신> 공연 모습.

연극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과 내·외적 갈등이 꼼꼼하게 표현됐다. 〈꽃신〉은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사위, 외할머니와 손녀 등 가족간의 사랑이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이야기의 중심축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딸이다.

극 중 '딸 옥련'에게 '어머니 순덕'은 딸의 기쁨은 흡수하고 아픔은 막아주는 '방패막이'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순덕이 치매를 앓으면서 옥련이 반대로 어머니의 방패막이가 됐다. 과거 딸이 아프면 순덕은 "어머니 손은 약손, 옥련이 배는 똥배"라고 배를 어루만졌지만, 이제는 딸이 "옥련이 손은 약손, 어머니 배는 똥배"라고 순덕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치매를 앓는 순덕은 어렸을 때 옥련과의 추억을 현재와 오락가락한다. 순덕의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매개체가 바로 '어린 옥련'인데 극의 중간마다 개입한다. 문제는 하얀 소복을 입고 나오는 어린 옥련을 보고 관객은 '어린 귀신인가', '죽은 아이인가'라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는 점. 어린 옥련과 현재 옥련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고리가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의 연기와 발성은 좋았다. 억세고 강한 경상도 방언 탓도 있겠지만, 배우들은 480석 규모의 공연장이 울릴 만큼 또박또박 대사를 처리했다. 순덕 역을 한 손미나 씨와 옥련 역을 한 박시우 씨의 연기도 빛을 발했다. 특히 치매를 앓는 어머니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옥련이 어머니를 향해 "차라리 나가라∼ 나가라"라고 밀칠 때,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많았다. 관객의 울음소리는 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꽃신〉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단순해서 관객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신이 너무 많고,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요소요소에 나타난다는 점, 전체적으로 미흡한 연출 등을 다듬는다면 성장 가능성이 큰 연극이다. 특히 〈꽃신〉에서 희곡과 연출, 연기 등 세 역할을 모두 소화해낸 장종도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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