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41)김해 파프리카 농민 정종현 씨

"하우스는 공기가 돌아야 온도가 일정한데 여긴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반팬을 꼭 설치하세요."

"주위에서 필요하다는 시설을 다 하자니 돈이 끝도 없이 들어가네요. 교반팬은 몇 개나 달아야 합니까."

"교반팬은 다른 시설에 비해 비용은 적지만 효과가 큽니다. 특히 밤에는 꼭 교반팬을 가동해서 하우스 내 공기가 돌고 온도가 일정하도록 맞춰주세요. 많이 설치하면 좋겠지만, 일단 각 모서리 등 8개 정도 설치를 하면 좋을 겁니다."

김해시 진영읍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정종현(58)·이주미(56) 씨 부부는 도 농업기술원 강소농기술지원단 채소전문가 황종헌 씨의 조언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부부가 열심히 들으며 궁금한 점을 묻자 황종헌 씨는 더욱 열성적으로 이것저것 조언했다.

김해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정종현(오른쪽) 씨가 경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기술지원단 황종헌 씨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이 부부는 올해로 파프리카 농사 2년 차로, 비교적 적지 않은 나이에 작물 전환을 했다. 부부는 빈약한 자본력과 뒤진 기술을 교육과 주위 조언으로 메우며 '제값 받는 농촌'을 꿈꾸고 있다.

◇잇따른 실패, 작물 전환 = "4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오면서 온갖 작물을 다 길러봤습니다. 실패도 참 많이 했죠. 벼농사부터 상추·오이·토마토 등을 재배하다 장미를 10년 가까이 키웠습니다. 그러다 구제역이 덮쳐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를 자제해 행사가 없어지면서 화훼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았죠. 주위의 권유로 애호박을 3년가량 키웠습니다."

작물을 전환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작물따라 시설도 기술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파프리카였다. 이곳 파프리카는 전량 일본에 수출한다. 수출품은 농약 안전성이 가장 민감한 문제. 규정에 맞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만, 판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은 기술 부족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지어 실패한 것 같아 농업 마이스터대학 등에 다니며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농사는 항상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황종헌(왼쪽) 씨와 정종현 대표가 적외선 온도계, 광량 측정계 등을 이용해 하우스 내 환경을 살펴보고 있다.

시설 재배는 투자를 많이 해야 하지만, 큰돈이 없었던 부부는 헌 자재를 사서 하우스를 지었다. 환경자동제어장치를 들이는 것은 꿈이었다. 그만큼 부부는 '몸'으로 작물을 돌본다.

작물은 주인의 발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부부는 쉴 틈이 없지만, 그만큼 작물들은 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부부는 처음 4.5m 높이로 하우스를 지어 장미를 키웠다.

"연료비가 겁이 나서 보온을 위한 커튼(막)을 3.5m 높이에 설치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파프리카로 전환했더니 하우스 실내 높이가 낮아 작황이 좋지 않은 겁니다. 파프리카는 어느 정도 자라면 '유인'을 해서 아래로 줄기를 내려주는데, 그 과정에서 식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상품 질 향상과 작황 호조를 위해 지난해 여름 하우스를 2m 높였다.

정 대표 하우스는 모두 14동으로 실평수는 7000㎡(2100평)가량이다. 파프리카를 심는 배지는 코코슬래브를 사용한다. 암면 배지는 수확 후 폐기물 처리가 힘들어 코코슬래브를 선택했다.

재작년 미니 파프리카를 계약재배 했지만, 일반 파프리카 재배에 제대로 뛰어든 것은 지난해. 첫해였지만, 생각보다 수확량이 괜찮았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겨울 한파로 냉해를 입는 등 벌써 수확량이 불안하다. 12~1월 착과가 시작됐을 때 날씨가 흐리고 눈이 와서 파프리카가 많이 떨어져 버렸다. 여기에 엔화 환율이 내려간 것도 걱정이다.

"우리는 파프리카를 전량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지난해 1450원까지 하던 엔화가 올해는 40% 정도 떨어져 1100원대라고 합니다. 올 농사는 이래저래 불안하네요."

◇농사는 항상 배워야 = 정 대표 부부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고 있다. 혼자서는 절대 농사를 못 지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파프리카 재배 컨설팅을 받고 있지만, 직접 파프리카를 짓는 선도농민이나 수출업체, 도 농기원 등 기관의 조언이나 교육이 농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경상대 최고경영자 과정과 농업 마이스터대학 파프리카 과정은 30년 관행 농업에 머물렀던 정 대표를 '전문 농민'으로 만들었다.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함안의 이필향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농사를 잘 짓는 분이세요. 이분이 참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함양의 주상열 사장님도 도움을 많이 주셨죠. 또 마이스터대학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김해농단 박봉성 회장님도 첫해에 실패하면 일어서지 못한다며 매주 와서 살펴주셨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계속 전화해서 물어보고 작물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연락했죠. 무역회사 강영훈 대표도 농가가 농사를 잘 지어 성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결코 혼자서는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최고경영자 과정을 1년 동안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전까지는 농사를 망쳐도 이유를 몰랐다. 그저 하늘만 탓했다.

"땅속에 뭐가 있는지, 뭐가 적고 뭐가 넘치는지를 빨리 파악해서 농사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데, 그전에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죠. 식물에 탈이 난 후에야 뭔가가 잘못됐구나 하고 원인을 찾으려고 검사하곤 했습니다. 늘 뒷북농사만 지어왔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3년 전 미니 파프리카를 하며 여러 교육에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혼자 교육받았던 정 대표는 이주미 씨도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선도농가 벤치마킹 등을 할 때 아내와 동행한다.

"부부가 같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만 알아서는 서로 이야기가 안 됩니다. 같이 알아서 같이 이야기해야 일도 수월하고 서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

정종현 대표 부부와 만난 날, 정 대표의 하우스에는 도 농기원 강소농기술지원단 채소전문가 황종헌 씨가 방문했다.

민간전문가로 활동하기 전 진주농업기술센터에서 20여 년을 시설채소 업무를 맡아 전문적인 활동을 했다는 황종헌 씨는 정 대표 하우스를 둘러보며 개선점이나 생육 문제점 등을 조목조목 짚어 냈다. 인터뷰는 뒷전. 부부와 황종헌 씨는 1시간 넘게 하우스와 재배 기술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종헌 씨는 정 대표에 대해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컨설팅을 해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잘못된 점을 수정하지 못하고 관행 농업을 되풀이하게 된다. 하지만 정 대표 부부는 조언을 들으려고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술 습득이 빠르다"고 귀띔했다.

◇제값 받는 농촌을 꿈꾸며 = 정 대표 부부는 힘들고 어렵지만, 농촌을 포기하지 못하는 천생 농군이다.

"아직 기술이 부족합니다. 할수록 어렵습니다. 배울수록 배울 게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해 실패하면 그 타격은 몇 년을 갑니다. 그래서 혹시나 태만해질까봐 스스로 채찍질하며 긴장을 많이 합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 농사를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다는 정 대표 부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놓진 못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 1년가량 농사를 내버려두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지을수록 적자가 났으니까요. 하지만 밭을 볼 때마다 '뭐라도 심어야 하는데' '저대로 두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 결국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농민들은 해마다 빚을 지며 살아요. 농사를 잘 지으면 그만큼 제값을 받고 팔아 농촌도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는 품을 조금 덜 들이고도 보다 품질이 우수한 파프리카를 수확할 수 있도록 시설 개선을 하나씩 해 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추천 이유>

◇황종헌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기술지원단 채소전문가 = 정종현 대표는 시설재배 농업인으로 1-2W연동형 시설에 파프리카(착색단고추)를 2년차 재배하고 있습니다. 김해지역에는 파프리카 재배농가가 적지만 이제까지 하던 화훼농사를 접고 파프리카로 과감히 전환하면서 경남 마이스터대학 파프리카 과정 수료와 강소농 활동을 통한 정보 교류 등 지식을 기반으로 고품질 및 수량을 올리고 있는 선도적인 농가입니다. 시설 보완 및 정확한 배양액 관리기술을 투입해 올해 파프리카 생산량을 국내 우수농가 그룹 수준으로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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