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발걸음 속에선 모두가 평등해요”

“뜬구름 왔습니까? 오늘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겨우내 불던 매서운 칼바람도 한들거리는 봄바람으로 변한 3월 7일. 볕은 강하지 않지만 춥지는 않고, ‘비가 올 것이다’는 일기예보도 얄밉지 않은 기분 좋은 봄날. 오전 9시 30분께 마산 마재고개 버스 정류소(중리 삼거리 방향)에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뜬구름 왔습니다.”

“두발로·로드항 부부도 저기 오네요.”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길사랑회’ 회원들이다. 실명보다 친목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 부르기를 더 애용하는 회원들은 닉네임만큼이나 개성 있는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빨간 점퍼를 걸친 이, 손수건으로 머리를 묶은 이,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이. 그리고 애당초 약속한 오전 10시가 되자 회원 40명이 모였다.

길사랑회(출발 전 준비운동) / 사진 이창언기자

간략하게 출석을 확인한 뒤, 이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신발끈을 동여매고는 원을 만들어 준비 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정쩡하게 흉내 내다 봄기운을 따라 서둘러 동행해봤다.

새로운 도전, 창원 300리 둘레길 걷기

길사랑회는 지난 2010년 9월에 설립한 동호회다. ‘걷기를 즐기면서 건강을 도모하고, 함께 걷는 많은 친구와 화목하게 지내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라는 목적 아래 출발한 모임. 작은 출발이 어느덧 회원 300여 명을 자랑하는 동호회로 성장했다.

회원들은 창원을 중심으로 부산·김해·함안 등 인근 도시에서 모였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창원에서 정기 둘레길 걷기를 했고, 그 중 둘째 주 목요일에는 다른 지역의 이름난 둘레길을 찾아가 걸었다. 지금까지 걸은 횟수만 171회, 거리는 약 1850km에 달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인 시간만 해도 약 730시간이고, 참가한 연인원도 4575명에 이른다. 특히, 날씨·계절에 상관하지 않고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걸어와 설립 취지를 잘 살려왔다. 또 해마다 두 번씩 2박3일 일정의 ‘특별 모임’도 열고 있다. 물론, 이 일정에도 둘레길 걷기는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제주올레길, 울릉도둘레길 걷기도 바로 그 기간에 이뤄냈다.

그리고 지난 2월 21일. 길사랑회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 사진 이창언기자

‘창원 300리 둘레길 이어걷기’다. 사실, 길사랑회는 이미 이름난 창원 둘레길은 모두 가보았다. 하지만, 이번 창원 300리 둘레길 이어걷기는 제각각인 창원 둘레길의 체계성과 연결점을 찾고 홍보까지 곁들인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또 창원 둘레길의 미비점, 개선점을 찾고 미연결 둘레길에 대한 의견 제시를 통해 관광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창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양하고 둘레길 연결을 통해 통합 창원시 위상을 드높이자는 따뜻한 마음이 모인 결과다.

그렇게 진행된 이어걷기가 3월 7일 자로 벌써 3회째였다. 지난 1,2회에 걸쳐 무학산 둘레길 걷기(밤밭고개-석전삼거리-중리역, 총 21km)를 완주한 길사랑회는 그 걸음을 천주산 누리길 걷기로 이어갔다. 그리고 앞으로 천주산 누리길 걷기를 마무리 짓고 정병산길(37km), 장복산길(40km)을 이어 걸은 뒤 오는 4월 25일 진해구 웅동면 한국전쟁기념비 앞에서 종료 선언식을 할 예정이다.

천주산에 처음 들어선 이날 계획한 길이는 총 12km. 총 22km인 천주산길 코스의 절반을 웃도는 길이였다. 마재고개에서 출발해 한샘꿈마당농원과 평성·안성마을을 거쳐 안성골짜기를 지나고, 제2금강산 능선을 따라 구암 편백숲으로 향하는 코스. 여기에 마지막으로 애기봉을 넘어 3.15 국립묘지에 도착해 하루를 정리할 예정이었다. 둘레길 신출내기라면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 길. 하지만, 이미 걷기라면 베테랑인 길사랑회 회원들은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예정된 계획을 환영했다. 그리하여 오전 10시 15분.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둘레길 이어걷기에 돌입했다.

‘함께 가는 먼 길’에 담는 이야기

‘빨리 걸으려면 혼자 가고 멀리 걸으려면 함께 가라.’

혼자서는 쉽게 걷지 못할 길. 하지만, ‘함께’라는 말에 의지하며 길사랑 회원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런 억압도 없이 스스로 택한 취미. 이미 한 가족이 된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짓더니 곧바로 체계적인 ‘걷기라인’을 형성했다. 꼬리의 꼬리를 문 회원들 발걸음은 족히 30m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목적지인 ‘한샘꿈마당농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회원들은 출발 전에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왼쪽부터 백순임 총무, 하영식 회원, 강재호 회장 / 사진 이창언기자

“건강은 괜찮고요?”

앞·뒤·옆 가릴 것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혹시나 힘들지는 않을까’하고 염려했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숨 가쁜 호흡도 필요 없고 ‘아이고 죽겠다’는 엄살도 없었다. 평소 늘 해왔던 대로 걷는 것. 게다가 자연을 벗 삼아 나아가는 길 위에서는 아무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이 활기 넘쳤다. 비교적 평지인 첫 코스도 무난한 출발에 힘을 보태주었다. 약 30분을 걷고 나서 한샘꿈마당농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주어진 휴식시간 10분 동안 회원들은 간단한 주전부리를 서로 나눠 먹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발걸음. 사실, 이번 코스는 정식 둘레길이 아닌 비둘레길 코스였다. 무학산과 천주산을 연결하는 둘레길이 마땅치 않아 길사랑회에서 철저한 사전 답사와 체험을 통해 손수 만든 코스다.

덕분에(?) 처음은 물론, 평성·안성 마을을 지나 안성저수지까지도 평평한 길이었다. 너무 무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둘레길이 주는 의미에 잘 들어맞았다.

‘빠르거나 지치지 않게 천천히 둘러서 간다’. 산과 들, 물을 끼고 걸어가는 동안 회원들 얼굴에 웃음이 넘쳤다.

낮 12시에는 난코스인 ‘안성골짜기’에 들어섰다. 휴식장소인 제2금강산 능선까지 총 20~30분이 소요되는 길.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도 빨라졌다. 전과는 다른 오르막길. 하지만, 결코 산을 정복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숨이 가빠온다 싶으면 선두에서부터 속도를 줄였고, 그래도 뒤처진 회원이 있으면 다 함께 기다렸다 가며 ‘공동의식’을 뽐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도 한 회원은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고, 다른 회원은 틈틈이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잠시 쉬어갔던 곳에서는 한 회원이 ‘오카리나’ 연주를 선보였고, 또 다른 회원은 창을 하며 화답했다. 회원들의 강인한 체력도 체력이지만, 진정으로 자연을 즐기는 모습은 둘레길 걷기의 참모습을 담고 있었다.

/ 사진 이창언기자

이윽고 도착한 제2금강산 능선에서 휴식·점심시간이 주어졌다. 회원들이 ‘길사랑 뷔페’라고도 부르는 식사 시간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봄나물부터 손수 담은 젓갈,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각종 반찬과 국까지. 인스턴트 음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푸짐하고 건강한 식탁은 길사랑회가 지닌 또 다른 자산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봄비가 내렸지만 회원들은 오히려 그 비를 반겼다.

“오늘은 희한하게 또 비가 오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나름대로 또 운치가 안 있습니까.”
한 상 가득 차린 식사를 끝내고 미리 준비해온 우의와 우산을 꺼낸 회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걸을 채비를 했다.

“실컷 올랐으니 이제 내리막 아니겠습니까.”

힘찬 외침과 함께 다시 자연스럽게 라인을 형성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선 말 그대로 최종목적지인 3.15 국립묘지까지는 대부분 내리막길이었다. 그 사이에도 회원들은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내리막이 주는 여유를 즐겼다. 최종 목적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쉬어간 구암 편백숲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5시간 가까이 걸어왔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완주한 이어걷기. 그 속에는 둘레길과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 길사랑회의 걷기는 삼쾌를 지향합니다.”

길사랑회를 만들어 이끌어 온 강재호(68) 회장이 전했다. ‘삼쾌’란 유쾌, 상쾌, 통쾌를 합친 말로 걷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 스트레스 해소 등을 길 위에서 모두 얻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마음을 바탕으로 한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강재호 회장은 정년 퇴임 직후 길사랑회를 조직했다.

“퇴임 후에도 좋은 체력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근데 나이도 있다 보니 예전같이 등산은 좀 무리가 있더군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둘레길 걷기죠.”

/ 사진 이창언기자

이와 같은 생각은 젊었을 적부터 등산 파트너이기도 했던 이동춘(68·길사랑회 운영위원장) 씨와도 맞닿아 있었다. 그리하여 길사랑회 첫 발걸음에 이동춘 씨가 힘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은 두 명이었죠. 그리고 일주일 뒤쯤에 열다섯 명으로 늘더니, 지금은 이렇게 대가족이 되었어요. 현재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인원만 사십 명에서 오십 명은 됩니다.”

현재 길사랑회 회원들은 대부분 40~60대다. 강재호 회장처럼 정년 퇴임을 한 뒤 가입한 회원도 있고, 한평생 가사일을 해오다 참여한 주부도 많다. ‘우리에게는 이 길이 제2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그들. 회원 대부분은 길사랑회는 물론, 다른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건강도 지키면서 또래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길사랑회 회원 하영식(68) 씨는 이와 같은 칭찬 외에도 회원들의 발걸음을 통해 창원 둘레길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닉네임으로 각각 두발로, 로드항을 쓰는 한 부부 회원은 장난스러운 몸짓을 섞어가며 길 위에서 남모르게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한적한 평일에 자연 속을 거닌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도 부부가 함께 나오니 오해받을 일도 없어요.”

익살스러운 그들의 말은 함께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활력이 됐다.

한편, 이날 걷기 행사에 처음 참여하며 길사랑회에 정식 가입한 회원도 있었다.

“지난주에 교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을 만나니 정말 행복하네요.”

이어 그는 “걷기가 심신 수양에도 도움이 되고, 특별한 요령이나 기구가 필요하지도 않아 우리 또래에게는 제격”이라며 첫 참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길사랑회(표식) / 사진 이창언기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 이들은 이미 한 가족이었고, 친구였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수다와 정을 듬뿍 담아 나누는 주전부리. 배는 물론, 마음마저 꽉 채워지는 걸음 위에 사람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다. 특히, 길사랑회에는 현재 암 투병 중인 회원, 걷기 참여 후 회복세를 보이는 회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어 ‘삼쾌’ 정신을 잘 녹아내고 있었다. 여기에 닉네임 ‘도원’을 쓰는 길사랑회 총무는 ‘이것이야말로 길 위의 행복’이라는 말로, 운영위원장 이동춘 씨는 ‘자연과 발걸음 속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로 길사랑회와 그들의 소중한 걸음에 의미를 더했다.

평등한 동행, 아름다운 도전

길사랑회 연 회비는 2만 원이다. 그리고 1회 이상 걷기에 참여만 하면 정회원 자격을 준다. 매번 꼼꼼하게 출석을 확인해 연말이면 우수 회원 시상식도 연다. 또 삼삼오오 소모임을 만들어 날짜에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걷기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이면 창원은 물론 전국을 향한 발걸음이 어김없이 이어진다.

“걷는 날을 목요일로 정한 이유는 한 주 중간쯤에 새로운 활력을 주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뜻도 있지요.”

강재호 회장은 걷기를 지정한 요일에도 의미를 담아내며 길사랑회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물론, 길사랑회가 단순히 건강증진, 친목도모에만 힘쓰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잘못된 이정표를 바로 잡고,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 확충, 파손된 길 보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즐기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이날 이어걷기에 참여한 회원 모두는 말했다. 청춘을 훌쩍 넘긴 나이도, 짓궂은 날씨도 이들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길 속에서 기쁨을 찾고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길사랑회만의 아름다운 도전, 평등한 동행은 계속 될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