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을 이끈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와 김유신 세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상대등 비담. 최근 방영 중인 KBS 대하사극 <대왕의 꿈>은 이 양자 간의 대결을 '가장 쉽고도 뻔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예의 김춘추는 지략과 인덕, 웅대한 포부 모든 걸 갖춘 희대의 영웅이고, 비담은 힘만 셀 뿐 탐욕으로 가득 찬 '미치광이' 권력자일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한쪽은 하여튼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역사에 길이 남게 돼 있고, 다른 한쪽은 하여튼 파멸해야만 하고 파멸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돌아보면 근 몇 년 간 방영된 대다수 사극이 이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KBS <광개토태왕>이나 MBC <계백> <무신> 같은 사극. 좀 다른 측면에서 답습도 이어졌다. MBC <대장금>의 이병훈 PD는 같은 방송국에서 <동이> <마의>로 '자기 복제'를 거듭하고 있었고, SBS는 <무사 백동수> <대풍수> 따위로 <추노> 흉내만 열심히 내고 있었다.

<대왕의 꿈>의 한 장면. 반란을 일으킨 비담(가운데)이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있다.

어차피 사극은 그게 그거라고 반문할지 모르나, 수 년 전 KBS <대왕세종>(2008년) 같은 두드러진 성취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세종과 대척점에 섰던 태종이나 조말생, 최만리 같은 인물들을 기억해 보자. 이들은 한글 창제와 역법 개발, 통치 철학 등을 놓고 세종과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저마다 원칙과 소신으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비정상적이기는커녕 인품과 정치력 역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보수주의자' 조말생이 생각하는 정치는 이런 것이었다. "반대하는 건 쉽지요. 일이 되게 만드는 게 어려운 것입니다." 퇴행을 거듭하는 최근 사극들이 인식해야 할 사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이 되게 만드는' 정치, 그 지난한 과정. 세상의 진보는 선과 악의 단판승부가 밀고 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 말처럼 세상은 결국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곳이기에, 증오와 반대를 넘어 '일이 되게' 하는 정치는 한층 더 풍부한 지혜와 굳건한 인내, 그리고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대왕의 꿈>은 비담의 권력욕을 나쁜 것으로 묘사하지만, 만약 반란 명분인 선덕여왕의 실정이 실제 심각했다면 어쩔 것인가. 김춘추의 권력욕은 선이고 비담의 권력욕은 악이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는가? 당나라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김춘추와 무리한 공역에 지친 민심을 활용해 반란을 일으킨 비담, 둘 중 누가 더 정치적·도덕적으로 나쁜지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을 때 역사 드라마는 깊이와 품격을 더할 수 있는 것이며, 시청자 또한 더 나은 세상의 모습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대왕세종>은 이원론의 세계를 거부한다. 세종 역시 권력욕을 숨기지 않으며, 반대편에 선 대신들도 진심을 다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권력을 쥐려한다. 정치의 세계에서 권력욕은 전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어떤 권력욕이냐이지, 권력욕이 없는 게 미덕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빈자리는 권력욕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차지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진정 어려운 것은 권력에 초연해지는 게 아니라 세종이 위기 상황에서도 견결히 지키고자 했던 원칙, 즉 '권력의 힘'을 쓰지 않고도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역설의 실현 아닐까. 우리가 고대하는 현실 정치의 풍경도 그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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