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 아들(이승준)이 쓰는 어머니(김행선) 이야기

큰 산처럼 항상 변함이 없는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흰머리가 하얘지시며 환갑을 바라보신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은 하늘과 같으신 어머니 김행선(57) 씨의 삶을 아들 이승준(29)이 함께 나누어 보았다.

-어렸을 적 얘기 좀 해주세요.

"9남매 중 여덟째로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중리 감천에서 태어났는데, 엄청나게 시골이었지. 지금은 아스팔트 길이 된 쌀재고개 앞에 밤만 되면 도깨비불이 밤새도록 나타나서 겁도 많이 났었어. 학교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걸어 다녀야 했는데 말이야. 도깨비불이라니…. 참 옛날 일이다. 그지?"

-막내 이모와 어머니는 많이 닮았는데, 어릴 적 에피소드 하나만 말해주세요.

"추석이었는데 너희 외할머니가 똑같은 옷을 지어 주셔서 어린 마음에 나는 충격이었지. 똑같아 보인다는 게…. 그래서 밖에 나가기 부끄러워서 동네에 웃옷을 벗고 다녔어. 하하하."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

-아버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친구가 수녀원에 들어가고 나도 나이가 스물여덟이 되었어. 대구 성 바오로 수녀원에 친구 면회를 가니 친구는 발령을 받아 전라도로 떠났더라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가을이었지. 단풍 밑으로 하늘을 보면서 그곳 잔디밭에 앉아서 기도했어. 결혼을 해야 할지 수녀원을 가야 할지…. 이제 길을 떠나 제 갈 길을 달라고 기도했어. 그런데 하느님께서 결혼 성소를 주셨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너희 할머니가 소개한 자리에 선을 보러 갔어. 그런데 이전에 선 자리에 나왔던 사람이었어. '결혼 안 할 생각'이라며 퇴짜 놓았던 사람을 다시 만난 거지. 다시 만난 게 인연이라고 설을 9일 남겨놓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을 했어. 너희 아버지는 선볼 때 친구 바바리를 빌려서 입고 나왔다고 하더라고. 어쩐지 결혼 후에 그 옷 찾는 데 없더라."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성당으로 이끌어 주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성당에 다니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나는 큰 바위 얼굴처럼 어딘가에 절대자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열심히 찾아다녔어. 하느님의 부르심은 나의 이 작은 소망 가운데에도 계셨지. 성지여중 입학을 하고 학교를 둘러보는데 성모마리아 상을 보게 됐어. 상 앞의 돌 성당 안을 열어보고, 매우 기뻐서 운동장을 몇 바퀴나 뛰어다녔는지 몰라. 그때부터 그 기쁨을 전하느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레지오, 학생회 같은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네. 내가 찾는 하느님, 종교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지."

코흘리개 시절 어머니와 나.

-지금 표구사를 하시잖아요.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어릴 때부터 산과 물을 좋아하고, 멋진 초가집과 양철지붕 그림을 잘 그렸어. 그러고는 항상 학습게시판에 뽑혔어.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그린 그림을 완성하는 계기가 된 거고. 표구를 통한 완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어머니 손을 보면 갈수록 거칠어지는데, 이 일이 힘들지는 않아요?

"힘들 때도 너무 많았지. 전시회 때 날짜를 맞추느라 일주일씩 밤 새울 때는 나의 손이 신의 손 같이 느껴졌어. 또 명절이 다가오면 더 바빠서 발을 땅에 딛기조차 어려울 때도 잦았고."

-옛날에는 피아노 선생님이셨잖아요,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10년 정도 피아노 선생님을 했어. 정반대 일을 네 아빠 권유로 하게 되었지만…. 어릴 적 꿈은 '문학소녀'였어. 그래서 글도 많이 썼고, 적십자에서 글짓기 해서 상도 받았지. 네가 학교 가기 전에 책가방 들고 서서 '시를 여섯 개 적어 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나네. 하하하."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뭐예요?

가족들과 함께 한 나의 졸업식.

"항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너의 대쪽같이 밝은 정직함으로 이 사회에 필요한 소금 역할을 다하길 바라고. 아무리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귀한 생명이잖아. 옹기장이가 빚어 만든 진흙처럼 어딘가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고, 항상 남에게 기쁨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면 더없이 좋겠어. 너의 넓은 가슴에 항상 하늘과 같은 사랑이 품어져 있어야 행복한 삶,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고는 먼저 멋지게 용서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아들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위해서만 희생하시며 자신의 삶은 없으셨던 어머니. 항상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은 가득한데 잘 표현이 되지 않는 아들이네요. 언제나 저의 힘이 되어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어머니,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항상 가족 옆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신 어머니, 이제는 우리 가족이 어머니 옆에서 든든하게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이승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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