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곳]의령 충익사

의령 앞에는 '의병의 고장'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를 대표하는 곳이 '충익사'다. 의령 9경 가운데 제일 첫 번째에 이름 올리고 있는 곳이다. 2010년 국가기념일이 된 '6월 1일 의병의 날'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충익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과 그 아래 17장령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곽재우 장군은 1552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태어났다. 과거 급제도 했다. 하지만 시정 비판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이후 초야에 묻혀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하여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장수 17명과 수천 의병을 거느린 곽재우 장군은 기강·정암진·현풍·창녕·영산·진주성 전투 등에서 승리했다. 이들 전투 승리 의미는 곡창지대인 호남지역 진출을 차단했고, 왜군 군수품 수송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데 있다. 특히 의병들 선전으로 관군 재정비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충의문./박민국 기자

이러한 의병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1972년 처음 열렸고, 1978년에는 이곳에 사당이 마련됐다.

충익사에는 의병탑·충의문·곽재우장군 유적정화 기념비·충의각·사당·홍의문·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의병탑이다. 1972년 군민 성금으로 건립됐다. 의병탑 전체 모양은 횃불을 상징하고 있다. 중간에는 백색고리 18개가 있다. 곽재우 장군, 그 아래 장군 17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충의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유적 정화기념비'가 있다. 의병 공적을 후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비로 1978년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충의각'이 있다. 곽재우·장군 17명 명판을 모신 곳이다.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상여 모양을 하고 있다. 1910년 지어진 것을 1978년 이곳으로 옮겼다. 목조건물로서 의장·기술적 보존 가치가 높다 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22호로 지정됐다.

충의각./곽재우 기자

이곳을 지나 홍의문을 거치면 사당이 나온다. 곽재우·장군 17명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의병들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671호인 '곽재우 유물'이 전시돼 있다. 곽재우 장군이 사용한 장검, 말갖춤, 포도연, 사자철인, 화초문백자팔각대접 등 6점이 있다.

이곳에는 눈에 띄는 나무도 몇 그루 있다. 1978년 사당 건립 때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식수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35년 됐지만, 아직은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 8.5m짜리 모과나무도 있는데, 수령 500년 된 것이다. 애초 가례면 수성마을 하천 변에 있던 것을 1978년 충익사 조성 때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83호로 지정돼 있다. 또한, 역시 수령 500년 된 뽕나무도 자리하고 있다.

의령박물관 내 곽재우 기마상./박민국 기자

한편에는 국기게양대가 있는데, 이는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이 기증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기념관에는 1978년 준공 당시 박정희 당시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개관 기념 테이프 커팅식 하는 모습이다. 충익사가 차지하는 의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충익사 바로 옆에는 의병박물관이 있다. 고고역사실·의병유물전시실·특별전시실·영상실·수장고 등으로 이뤄져 있다. 입장료는 받지 않으며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화요일 휴관) 문을 열어놓는다. 충익사 주소: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번지. 〈끝〉

의병탑./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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