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서울 노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강력한 경쟁자의 재등장이 달갑지 않은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등 '진보'를 말하는 쪽에서도 비판을 쏟아낸다.

충분한 공감대가 없었다, 쉬운 길을 택했다, 논리는 여럿인데 핵심은 결국 이 선거구가 진보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의 '영토'라는 데 있다. 삼성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한 신망 받는 정치인의 지역구에 왜 갑자기 나타나 숟가락을 들이미냐는 것이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부당한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기회가 빛이 바랬다."(노회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진보정의당이 국민적 심판의 적임자로 내세운 후보가 다름 아닌 노회찬의 부인 김지선 씨다. 누가 봐도 '또 다른 노회찬'을 앞세워 당당하게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모양새다. 동정심에 기대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물론 진보정의당은 펄쩍 뛴다. 김지선 씨가 "평생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에 헌신한 독자적인 정치인"임을 강조한다.

서울 노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지선(가운데) 씨와 남편 노회찬(왼쪽) 전 의원이 12일 상계동 마들역에서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유권자들의 시각도 그럴까. 진보정의당이 뭐라고 한들 이 낯선 정치 신인은 '노회찬 부인'이란 딱지를 벗을 수 없다. 진보정의당과 노회찬은 이를 빤히 알면서도 김 씨를 출마시켰다. 그래놓고 "노회찬 아내로, 대리인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강변한다. 마치 그렇게 보는 사람이 문제 있다는 투다. 평생을 가치 있게 살아온 여성을 한 남자의 보완재로 가두어버린 건 바로 당신들이다.

노원 병 선거가 노회찬 개인의 '한풀이 무대'가 아니라 진정 삼성과 검찰, 사법부 심판의 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후보를 적극 찾거나 공모하고 적절한 선출 절차를 밟는 게 옳았다. 그게 진보답다. 이를테면 삼성과 반노동 악법에 맞서 싸워온 노동자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진보정의당 측은 '지역구 세습 논란'에 대해 "영광되고 편안한 것을 물려받았을 때 세습"이란 반론을 폈지만 아무리 봐도 김지선 씨는 '영광된' 자리(국회의원 후보)를 '편안하게'(전략공천) 물려받았다. 진보정치 세력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견결히 지켜온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는 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

진보신당은 한술 더 떴다. "삼성이 동네 빵집 내겠다는 꼴"이라며 안철수의 양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진보정의당은 그래도 지난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의 야권연대에 한발 걸쳤으니 잠시나마 '한 식구'를 향해 섭섭함을 표출할 수 있다고 치자. "노동과 경제민주화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안철수와 분명한 선을 긋고 노동자 후보 김소연을 지지한 진보신당은 대체 왜 난데없이 등장한 걸까. 진보 정치인도 아니고 연대의 대상도 아니라면 노원 병에 나가든 부산 영도에 나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안철수의 무조건 양보를 거의 읍소하다시피 하는 두 진보정당의 모습에서, 그리 머지않은 과거, 분열 전 민주노동당이 지녔던 '거대한 소수'로서 자존심과 자긍심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소위 '닥치고' 야권 연대부터 부정 경선, 폭력 사태, 합당과 분당 등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엄청난 일을 겪은 탓일까. 세상에 대한, 진보의 원칙에 대한 감각이 갈수록 무디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노회찬은 "궁색하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고 안철수를 비난했다. 추락을 거듭하는 진보정치의 참담한 꼬라지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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