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생이 된 조카가 묘하게도 대학 과 20년 후배가 되었다.

사흘돌이로 전화 문자를 하며 걱정거리를 연신 쏟아 붓더니 입학 일주일 만에 살이 부쩍 빠져서는 주위를 모두 안타깝게 하는 것이었다.

학교도 사람도 너무 낯설고 추웠을 것이고 수업으로 강의실을 쫓아다니는 것도 힘들었을 터이다. 무엇보다 새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적잖이 답답함과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사는 건 크게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는 건지, 또 그것은 시작도 끝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것인지. 연신 힘겨움을 털어놓는 조카 애의 근심어린 눈빛 위로 20년 전 불안했던 내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그렇지만 어린 민정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은 그저 소풍 왔다가 가는 것처럼 즐기며 살아도 되는 것임을 나처럼 2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어리석게 깨닫지는 말아줘.

사실 조카를 만난 지난 주말은 아버지의 서른 번째 기일이었다. 서른아홉이 마흔을 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가여운 분이지만 그래도 세상 밥을 마누라와 자식들 정성으로 해마다 꼬빡 챙겨 드셨으니, 이젠 서러움도 안타까움도 다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훌훌 날려 보내도 될 만하지 않겠느냐고 사진 속 아버지를 향해 눙쳐본다.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사진 속 서른아홉 아버지는 늙지 않은 청춘이다. 결코 넘겨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나이에 이제는 내가 비로소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아버지는 나보다 젊으실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버지, 고작 반평생 살아놓고 세상이 야속하다고 여기지 마세요, 못 다한 남은 반평생은 제가 마저 재미나게 살아볼 터이니.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우린 무슨 말을 서로 나누고 또 어떤 일들을 함께 하며 놀까. 아마도 휴일에는 어제 남편과 함께 한 호젓한 산책처럼, 집 뒷동산에서 꺾은 노란 개나리를 화분에 묻어놓고는 얼굴이 다 일그러지도록 배시시 웃어댔겠지.

또 모르는 이의 무덤가에서 꺾어온 쑥으로 따끈따끈한 전을 부쳐 먹으며 낡은 전축에서 흥얼대는 옛 노래 소리들에 흥건히 녹아들도록 온몸을 맡겨두겠지. 그 산책길 무덤가에서 만난 붉은 동백꽃은 도대체 어느 무덤 속 주인의 못다 이룬 꿈이어서 그토록 투명하게 빛났던 걸까. 파릇파릇한 쑥밭에 제 몸을 다 내어놓는 어느 낮은 무덤은 어떤 사람이 간절히 바라던 꿈의 흔적일까.

   

산다는 것은 그렇게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이 반복되고 겹치는 것인지, 못다 이룬 꿈들은 또 다르게 알 수 없는 삶을 향해 제 몸을 내어주게 되는 것인지.

무덤가에서 내려다본 낙동강은 마치 무슨 깊은 비밀이라도 품은 양 아득하고도 멀게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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