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교 오거리 터줏대감’을 아십니까?

마산 산호동에는 오래된 빌딩 하나가 있다. ‘마산 최초의 법랑 건물’. 빨간 벽돌 사이사이에는 세월이 짙게 배였고, 측면에는 ‘칠선녀’라 불리는 정교한 벽화조각이 붙어 있다. 총 6층, 층당 평수는 150평가량. 본관과 별관으로 분리돼 있으며, 빌딩 정면 한 편엔 갖가지 간판이 달려 있다. 건물 뒤편에 마련된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1층 커피숍에는 향수와 정겨움이 묻어 있다. 한 때는 잘 나가던 호텔이었지만, 지금은 임대 사무실들이 가득 차 있는 빌딩. 멋들어지게 세운 돌기둥, 선탠이 진하게 된 창, 빛바랜 금빛 간판이 가장 먼저 반기는 곳. 이제는 또 다른 변화를 꿈꾸는 마산 ‘썬스타 빌딩’이다.

빌딩주 백홍기(76) 씨는 같은 건물 내 ‘썬스타 커피숍’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160cm가 조금 넘는 키와 다부진 몸매. 손은 거칠었지만 얼굴 피부는 고왔으며, 목소리는 크고 우렁찼다.

“평소에는 옥상에서 손수 텃밭을 가꾸면서 지내다 보니, 트레이닝 차림이 많았는데 오늘은 인터뷰 한다고 해서 정장까지 갖춰 입었네요.”

빌딩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도 30년 넘게 직접 빌딩 영업을 한다는 열정과 빌딩을 토대로 쌓은 넓은 인맥이 엿보였다.

“무슨 얘기부터 하면 될까요. 음, 우리 빌딩은 그….”

썬스타 빌딩 /사진 이창언 기자 netmaster3@idomin.com

1983년 어린교 오거리에 완공

80년대를 시작으로 90년대까지를 마산(현 창원 합포구, 회원구 일대) 부흥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7대 도시’, ‘창동·오동동 전성기’ 마산시사를 이야기 할 때 이 시기를 빼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썬스타 빌딩이 세워질 그 당시, 백홍기 씨가 본 마산은 조금 달랐다.

“어린교 오거리, 여기는 허허벌판이었죠.”

당시 비교적 상권이 활발했던 창동․오동동에 비해 어린교 오거리 일대는 오래된 작은 다리 하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장소에 썬스타 빌딩은 세워졌다. 시에서 산호동 구역정리를 한 뒤로 썬스타 빌딩은 제일 처음 들어선 ‘현대식 건물’인 셈이다. 빌딩이 문을 연지도 벌써 30년째, 썬스타 빌딩은 그야말로 터줏대감이 되었다.

“젊었을 적 대한통운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직장 특성상 전국을 돌며 일을 해왔는데, 특히, 직원연수교육 때부터 서울에 유독 방문할 일이 많았죠. 그때마다 서울 곳곳에 자리 잡은 고층 빌딩들을 보며 남모를 동경심을 키웠어요. 나도 저런 빌딩 하나쯤 짓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백홍기 씨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1961년 결혼하면서 마산에서 살기를 원했고, 마산지사 발령과 함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때마침 지금 신세계 백화점 주변 땅을 살 기회가 생겼지만, 그는 그 땅을 포기하고 지금 썬스타 빌딩을 세운 터를 선택했다.

“큰 도로가 보기 좋게 복개된다는 소식을 들어서 선택 한 부분도 있지만, 필요 없는 땅 수천 평을 가진 것보다, 필요한 곳 한 평이 훨씬 이득이라는 신념이 크게 작용했죠.”

땅은 샀지만 빌딩을 세우는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건축을 시작하면서 당장 위기가 닥쳤다.

“애당초 ‘한호건설’에 시공을 맡겼었죠. 건물 자체를 담보로 하고 빌딩을 올렸고 꿈도 키웠어요. 하지만, 3층쯤 지었을 때 대금을 치러주지 않으면 더는 빌딩을 짓지 않겠다고 건설사 측이 떼를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빌딩 자체를 가져가 버리던 때였다. 결국, 가지고 있던 트레일러 7대를 모두 압류당하고 만다. 그나마 평소 알고 지냈던 한 은행 지점장 덕에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빌딩을 날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백홍기 씨는 다시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부산에 있는 한 건설업체에 나머지 시공을 맡겼다. 건축 막바지에 곁들인 증축은 부산에 있는 ‘남강토건’에 맡기며 갈무리 지었다. 1983년 8월 21일이었다. 하지만, 이때 완공한 썬스타 빌딩은 지금 모습과 달랐다. 백홍기 씨는 1997년 건물 옆 공터에 별관을 증축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남겨 둔 공터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지요. 자다가 생각해보니 정말 이렇게 둬선 안 되겠더라고요. 그야말로 한 밤중에 증축을 결정했습니다.”

그 길로 손수 돌기둥까지 디자인하며 증축을 진행했다. 이렇게 썬스타 빌딩은 현재 모습을 완성했다. 총 4개 업체가 작업한 빌딩, 그가 품었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마산 최초 법랑 건물 ‘단 하나의 빛’

백홍기(76) /사진 이창언 기자 netmaster3@idomin.com

법랑이라는 건축 재료가 있다. 쉽게 말해 철판에다가 유리질 유약을 붙인 것인데, 썬스타는 그 법랑을 이용해서 지은 건물이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철판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일본산 아니면 독일산을 이용했고, 백홍기 씨 역시 독일산을 수입해 썼다.

“독일에서 건너온 철판에 사기를 붙이고, 법랑으로 만들어 건물에 입혔어요. 당시에는 생소한 건축 재료인데다, 건축업자들도 낯설어 해 호기심에 해머로 깨부숴보기도 하고 난리였죠. 나는 또 떨어진 거 잡으러 다니고….”

마산 최초라는 법랑 건물은 그렇게 세워졌다. ‘최초’ 수식은 빌딩 꼭대기에 자리한 네온 간판에도 붙는다. 빌딩을 지을 당시에는 전기료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네온사인 간판을 허가받을 수 없었다. 백홍기 씨는 시청, 한국전력, 도청을 오가며 결국 정당한 허가를 받아냈다. 그가 ‘대한민국 1호’라고 자부하는 네온사인 간판은 그렇게 온전한 불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는 건물 외벽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김일성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나 혼자 심각했어요. 결국, 원자폭탄이 터져도 이상 없는 내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처음에는 건물 외벽을 납판으로 감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납판을 대량으로 구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결국 대안은 벽돌과 단열재를 층층이 쌓아 벽면을 감싸는 것이었다. 두꺼운 곳은 1m 정도 된다는 튼튼한 외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썬스타’라는 이름 역시 그가 지은 것이다. 당시 빌딩 이름, 특히 호텔 이름은 작명소에 부탁하거나 외국 유명 호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빌딩 짓기 전까지 운영한 세차장 이름 ‘천광중화’에서 ‘천광’을 따서 이름으로 사용했다.

“하늘 천, 빛 광. ‘하늘빛’이라는 의미 좋잖아요. 게다가 하늘에 떠 있는 빛, 이는 단 하나뿐인 태양을 암시하니 ‘일성’이라 칭할 수도 있죠.”

건물 곳곳에 밴 자부심

썬스타 빌딩 /사진 이창언 기자 netmaster3@idomin.com

백홍기 씨가 썬스타 빌딩으로 처음 시작한 사업은 호텔이었다. 수출자유지역과 인접한 위치 덕에 수입도 꽤 안정적이었다. 주요 손님은 흔히 말하는 VIP들이었다. 수출자유지역을 방문한 고객, 외국바이어, 판사, 검사, 시장․군수 등은 썬스타 빌딩에서 묵었다. 하지만, 그는 1997년 호텔 사업을 정리한다.

“세금 때문이지요. 세금….”

현재는 다른 노래방으로 바뀐 지하 단란주점, 사우나, 식당, 카페까지 두루 갖췄던 빌딩에는 엄청난 세금이 붙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세금만 700만 원이 나갔다. 게다가 각종 기관에서는 세금 아닌 또 다른 세금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그는 결국 호텔 사업을 접고 사무실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썬스타 빌딩에는 커피숍, 댄스학원, 미용실, 사진관, 일식집 등이 있다.

썬스타 빌딩은 최근 주변에 들어선 건물들과 비교하면 이제는 세련된 건물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외관이 눈길을 끄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건물 속 보이지 않는 곳곳마다 들인 공은 상당하다.

“일반인들은 잘 알아볼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와서 보고 엄청 놀라요. 사실, 잘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빌딩은 약간 기울어져 있죠.”

눈에 띄지 않게 기울어진 빌딩은 비가 오면 바로 물이 떨어져 습기가 차지 않고, 비가 샐 염려도 없다. 그리고 썬스타 빌딩 배관은 건축 당시에는 매우 드물게 주철로 돼 있다.

“사람으로 따지면 핏줄과 같은 역할이 배관인데, 물 흘러가는 그 길을 주철로 하고, 스테인리스강과 동으로 보충하고…. 기본이 튼튼한 거죠.”

덕분에 썬스타 빌딩은 30년 동안 수리를 하거나 관리 등을 위해 손을 대는 일이 없었다. 물론 불만스러운 점도 있다. 빌딩을 세운 뒤 진행된 도로 확장 공사로 도로와 건물이 바짝 붙으면서 건물 앞을 지나는 대형차들 때문에 집 자체가 울렁거린다는 것. 벽돌 무게까지 더해져 그 충격에 집 전체에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건물을 손 볼 계획은 없다. 애당초 튼튼하게 지은 덕에 큰 보수 공사 한 번 없었던 빌딩을 더 믿을 생각이다.

“계획은 없지만, 혹시 벽돌 하나라도 금이 간다면 사정없이 손을 볼 거예요. 내가 우리 빌딩을 사랑하지만 역시 안전이 우선이죠.”

만약 썬스타 빌딩을 재건축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는 빌딩을 처음 지을 당시 품었던 계획 하나를 귀띔했다.

“옥상에 놀이기구를 설치하려고 했었지요. 대만에 좋은 호텔 옥상 같은 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작은 기차, 미니 바이킹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걸로 빌딩 홍보, 나아가 도시 홍보까지 하려고 생각했는데….”

아득한 지난날을 떠올리는 백홍기 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백 씨의 오래전 꿈은 지나간 꿈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썬스타 빌딩 /사진 이창언 기자 netmaster3@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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