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아들(이승우)이 쓰는 아버지(이상래) 이야기

이상래(63) 씨. 1951년 2월 15일 창원에서 태어났다. 현재 아내 김응복(56) 씨 사이에 1남 3녀를 두고 있으며, 창원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꾼으로 살고 있다. 표현이 서툴고 고지식한 경상도 아버지이지만, 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아버지다. 아들 이승우(25)가 아버지를 인터뷰했다.

◇힘든 나날의 연속 = 현재 농사꾼으로 살아가며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 있기까지, 고독과 헤어짐을 견뎌야 했다. 창원시 동읍 화목리, 그중에서 가장 오지에서 태어난 그는 밥 대신 물을 먹어야 할 만큼 가난했다. 1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뿔뿔이 헤어졌다.

"원래 4남 1녀였어. 남동생 둘은 태어나자마자 죽고, 아버지는 13살에 지금으로 치면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 어머니는 재혼했는데, 여동생만 데리고 가 나 혼자 됐어."

형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달랐다. 가난에 형은 고모 집으로 갔다. 혼자가 된 그는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19살까지 동네에 사는 사촌 형 집에서 소를 키우고 밭일을 도와주며 생활해야 했다. 당신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약방을 하는 고종사촌 형 집으로 갔다.

약사인 사촌 형은 버스를 타고 마산에서 약을 사왔다. 버스가 드문 시골이라 약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3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그는 사촌 형이 사오는 약을 지게로 날랐고, 소화제나 연고 같은 기본적인 약품들도 팔고 농사일도 거들었다.

19살부터 29살까지 10년을 약방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농사의 법칙 = 사촌 형 소개로 아내인 김응복 씨를 만났다. 그녀 집은 그 당시 밥 넉넉히 먹는 편이었다.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농사지을 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논을 샀다. 그리고 1980년 1월 2일 동읍 농협에서 결혼했다.

"겨울인데 비가 억수로 왔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장하게 생각하며 우는 거 같았지."

결혼 후, 지을 수 있는 농사는 다 지었다. 벼농사·고추 농사·배추 농사·감 농사 등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했다. 결혼 초에는 다른 사람 논 일도 도왔다. 당시 1000만 원 하는 이앙기를 샀다. 기계값을 건지려면 꼬박 2년을 일해야 했다.

"남보다 모를 꼼꼼히 심었어. 1년에 600마지기 모를 심었는데, 평수로는 9만 평(29만 7520㎡)정도 될 거야. 모 심는 시기엔 전화기가 불났던 기억이 나네." 짚단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미꾸라지를 잡아 팔고, 시장에서 배추를 팔기도 했다.

"하루 100포기 정도 팔았지. 기름값 빼고도 돈이 좀 남았단다."

20년 전부터는 수박 농사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양 때문에 한 시간 일찍 일을 시작해, 한 시간 늦게 마친다.

아버지 이상래 씨와 어머니 김응복 씨가 수박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래도 아내와 둘이서 하기엔 양이 많았다. 시간만 나면 너네(아들·딸)가 와서 도와줬기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절대 못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굴 통당 250만 원 받을 때, 30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비결을 노력이라고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한 해 수확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어. 똑같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지."

그는 지금 동네에서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자부한다. 가끔 찾아와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가족을 위해 한없이 베풀다 = 그의 집은 설이나 추석날 제사상에 밥그릇이 다섯 그릇 올라간다. 하나는 아버지 것이고, 하나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것이다. 나머지 세 그릇 주인은 누굴까?

"한 그릇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처란다. 그러니깐 큰엄마인 셈이지. 나머지 두 그릇은 형님과 형수님 그릇이고…."

그의 형은 결혼하지 못하고 20대에 돌아가셨다. 자식이 없는 형님의 제사를 지내주다, 몇 해 전 영혼결혼식을 했다고 했다.

"제사 지내는 게 뭐가 어려워? 원래 놓는 거에 밥그릇·국그릇·고기만 사람 수에 맞춰 올리면 되는 건데…. 다 우리 가족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거야."

그는 농사일이 끝난 저녁, 가끔 마을 회관에 들른다. 회관에는 자식들이 타지로 나가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 그는 같이 고스톱을 치거나, 술안주 하라며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드린다. 할머니들이 한사코 사양하면 '길 가다 승우(아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세요'라고 하고는 돈을 건넨다. 그렇게 만 원이 나가면 2만 원의 행복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꿈? 늙어서도 가장으로 남고 싶어. 아들·딸에게 신세 지지 않고 나눠주며 살고 싶단다."

1남 3녀를 힘들게 키웠지만, 자식들에게 용돈 받기보다는 용돈 주며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앞으로 태어날 손자·손녀가 뛰어놀 작은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한다.

"농사를 계속 지어야지. 어릴 때 못받은 사랑을 나눠주며, 그렇게 살고 싶어."

아버지는 우리에게 있어 집입니다. 비바람을 막아주고 눈보라를 막아주는 집입니다. 항상 자식들에게 희생하며 살아온 아버지. 이제 4남매가 아버지 집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아버지와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승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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