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이 더러 있다. 이 중 단연 인상 깊었던 곳은 우리 땅에 있어도 우리나라 사람이 쉽사리 갈 수 없는 백두산이다.

이전 직장의 회사 창립 10주년 기념 여행이었다. 3박 4일간 직원·가족 등 400여 명이 중국 여행을 떠나게 됐다. 사장의 강력한 의지로 주 관광지는 한국 사람들이 태어나서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한다는 백두산.

여행 첫날. 일부는 김해공항에서, 일부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했다. 나는 김해공항에서 전세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륙 허가가 늦게 나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탑승했고 약 3시간이나 걸려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연길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여느 고속버스터미널보다도 작고 초라했다.

우리는 인천에서 이미 도착한 팀들과 합류해 그 초라한 공항을 배경으로 '회사 창립 10주년 기념 여행'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각자 지정된 차량에 탑승을 했다. 연길 시내로 들어가는 풍경은 초라한 연길공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휑한 거리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관광버스가 약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식당이었고 시장했던 우리는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장이 웬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우리를 붙잡고 간단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의아했던 우리는 뒤늦게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그 해에 첫 번째 백두산 관광객이었고, 그것도 규모가 꽤 큰 관광객이었다는 사실을. 사장의 인터뷰는 그날 저녁 연변 방송에 나왔고 그 다음 날 신문에도 조그마하게 실리게 되었다. 덩달아 우리도 스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들뜬 기분은 첫 관광 장소인 두만강에 도착하면서 사그라졌다. 두만강으로 오는 동안 조선족 안내자 분께서 두만강에 대한 사연을 소개해줬는데 괜스레 서글퍼졌다. 내가 아는 두만강이라곤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가 전부였다. 부끄럽지만 이번에 두만강이 중국과 북한을 끼고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중국으로 도망올 때 건너는 강이라고 '도망강'이라고 불렀다. 낮에는 발각될까봐 건너지 못하고 밤에 불도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넌다고 한다. 먹을 게 없기 때문에 거기서 굶어 죽으나 강을 건너다 잡혀 죽으나 어차피 매한가지라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강을 건넌다고 한다. 싸늘한 날씨와 건너편에 보이는 벌거숭이 산들, 북한의 슬픈 현실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두만강을 떠나 숙소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벌거숭이 산들. 북한의 산이 벌거숭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연료와 식량 부족 때문이다. 무분별한 벌채 및 개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슬픈 현실 속에서 또 하나 확인된 현실은 그 벌거숭이 산에조차 김정일 우상화 문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국민은 배를 곯아 죽어 가는 판에 저따위 우상화가 무슨 소용인가.

   

단순한 백두산 관광으로 시작된 이번 여행은 백두산에 가기도 전에 계속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무거운 마음들은 내일 있을 백두산 산행을 위해 잠시 내려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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