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타로 점집

은은한 조명 아래 펼쳐진 비밀스런 공간. 입구 옆에는 마법사로 보이는 노인 조각상이 서 있고, 그리스 신화에 나올법한 인물들이 담긴 액자가 사방에 걸려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디오와 작은 테이블 두 개. 그리고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으며 앉아 있는 여인. 그 곁에는 '운명의 수레바퀴'에서부터 '정의의 여신', '광대', '마술사', '교수형을 당한 죄인' 등 세상 만물을 대변하는 그림이 담긴 타로가 있다. 애정, 취업, 재물과 관련한 행운과 불운이 모두 있어 수만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그 카드. 여기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신세대 점집'이다.

16㎡(5평) 남짓한 점집 안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한창이다. 남녀 두 명과 마주앉은 점쟁이는 본인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쏙쏙 끄집어낸다. 이야기를 듣던 여자는 매서운 눈빛을 하고 남자 옆구리를 콕 찌른다. 남자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한 커플은 가벼운 승강이를 벌인다.

"오빠, 뭐 물어볼 거야?"

"이런 건 다 믿기 나름이다. 오빠 안 믿나!"

한참을 재잘대던 커플도 막상 차례가 다가오자 긴장한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남자친구를 쏘아대던 여자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큰 움직임 없이 태연하게 앉아 있던 남자는 갑자기 다리를 떤다. 어차피 재미삼아 보는 것이지만, 또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행여나 '안 맞는다'고 하거나, '크게 다툰다'고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물론, 금방 잊힐 일이지만 내심 불안한 건 사실이다. 누구에게 좋고 불리할지 모를 상황. 그야말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선은 궁금증 해소가 먼저다. 게다가 좋은 결과만 나온다면 사랑도 더 깊어질 수 있다. 이윽고 차례가 돌아오자 두 남녀는 조용히 점쟁이를 마주 보고 앉는다. 이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속삭이듯 내뱉는 말을 들어가며 둘 만의 미래를 펼칠 것이다.

시대가 변하듯 '점'을 보는 방식은 물론 점을 봐주는 점집도 변하고 있다. 허름한 한옥 골목에 어김없이 쓰여 있었던 '점'이라는 간판, 조그만 텐트를 치고 '사주', '궁합' 등과 같은 글자를 써 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방식은 구식이 되었다. 이제는 영화관, 지하상가, 백화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특색있게 꾸민 다양한 점집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고, 스마트폰과 접목한 점을 쳐 볼 수도 있다. '타로점'은 그중에서도 인기다. 다른 방식에 비해 비교적 간편하고 흥미 위주인 타로점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카페와도 접목하여 '타로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대학가 중심으로 많이 퍼진 상태다. 타로점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명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막연히 옛날 중국, 인도 등 여러 지역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류 역시 정통 또는 클래식으로 불리는 '마르세유타로'를 비롯해 그 종류만도 1000 종이 넘는다.

하지만, 막상 점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속사정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당장 이 공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타로점 보기를 끝낸 젊은 두 여자가 일어섰다. 하지만, 얼굴은 전혀 딴판이다.

"나는 언제 연애해 보니? 딴 데 한 번 가볼까?"

울상을 한 여자가 푸념하듯 내뱉는 말에 다른 여자는 약 올리듯 받아친다.

"너는 당분간 힘들다고 하잖아. 그러지 말고 조만간 좋은 남자가 생길 수 있다는 나를 팍팍 밀어줘라."

젊은 커플과 여성들이 유독 많이 찾는 타로점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점은 역시 '커플 타로'와 '애정운'이다. 커플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솔로들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님'을 만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얻는다.

'남자친구가 바람기가 좀 있네', '둘은 결혼까지 할 수 있겠다', '5월에 소개팅 들어오면 무조건 잡아야 해', '가을까지는 좀 힘들겠네. 너무 애쓰지 마'와 같은 말이 오갈 때마다 희비가 교차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딱 맞아떨어지는 해석에 손뼉까지 치며 놀라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믿어야 하는 말, 믿고 싶지 않은 말, 믿을 수밖에 없는 말. 다 같은 말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한 여자가 홀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다 이내 점쟁이 앞에 앉았다.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다 이내 보는 점은 '취업운'. 취업이나 진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이곳은 잠시나마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를 맹신하거나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당시에 기분 좋으면 그만이고, 혹 듣기 싫은 소리가 나오면 독한 마음으로 '그 예언 내가 깨주겠어'하면 된다. 5000원과 카드 5장에 운명을 맡기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